[칼럼] 나의 사랑, 나의 자랑

330

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에 아주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종종 성경에 소개된 바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교회를 향한 분노와 저주를 가슴에 품고 그것을 해치려 늘 살기등등하게 살았던 인물였습니다. 얼마나 지독히 기독교를 핍박했던 인물이었던 지, 다메섹 여정 중에 그 앞에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조차 그 바울을 향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생명을 다 내어 주기까지 복음을 전하며,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소망과 사랑을 함께 나누며, 끝내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듯,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는 지나간 과거로부터 진정 새로워진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의 삶은 주님에게서 발견한 “영생”의 삶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듯,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그리스도 예수안에 경험하는 삶의 질과 내용은 다름아닌 바로 예수님과 같은 삶, 곧 영생하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같이 과거의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사건은 참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더욱이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차별없이 세상의 모든 이들을 주님은 초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모든 구원받은 백성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상속자(heirs)요, 한 몸을 이루는 지체(members)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함께 나눌자들(sharers)이 되었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그럼으로 교회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그 신비”(The Mystery)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엡3:6)

이젠 탈북자들이 한국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나라의 국정을 다루는 의정활동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음을 신문을 통해 읽게 됩니다. 영국으로 망명한 박지현씨는 탈북자로서 최초로 영국지방정부의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참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유세계에서 얻은 개인의 행복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인권,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더욱 국제적인 관심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손모아 기도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의 경험을 듣게 되면 그들의 탈북과정에 교회의 도움을 통해 자유의 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 노라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들의 기가 막힌 인생의 운명앞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 신비한 은혜의 체험을 간증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개인의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어두운 운명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그 신비”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세상속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God’s Eternal Purpose)이라고 소개합니다. (엡3:11) 교회는 비록 연약하고 실수하기 쉬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이지만, 한 믿음, 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불같이 일어나는 은혜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뤄가는 주님의 “그 신비”입니다. 바로 이 같은 교회의 사명은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맡겨지지 않은 일이며, 도리어 천사들이 주목하며 보기를 원하는 일입니다.(엡3:10, 벧전1:12)

중국 사람들은 어디가든 식당을 만들고, 한국 사람들은 어디가든 교회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같은 말은 교회에 대한 좋은 의미로 하는 말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다 그렇듯 실망도 있습니다. 이 같은 교회에 목사의 한 사람으로 가끔 누군가에게 “이젠 교회 졸업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맘에 밤잠을 설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며 소망속에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땅에서 여전히 그 측량 못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그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할 인생의 높고 큰 의미와 목적은 개인의 청취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인 교회와 함께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있어 “나의 영원한 사랑이요, 나의 자랑!”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