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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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이웃교회 담임/미육군 채플린)

 

성탄절의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하나님이 “아기”가 되셔서 세상에 오셨다는 멧세지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깨어지기 쉬운 가장 연약한 존재가 되어 세상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곧, “스스로 자기를 비워” (Made Himself Nothing/Vulnerable) 자신을 낮추어 우리에게 오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빌2:7).  락포드병원의 신생아병동 NICU (Neonatal Intensive Care Unit)에서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 채필린으로 일할 때입니다. 다급히 채플린을 찾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니 난 지 채 몇개월도 되지 않은 신생아가 거의 숨이 머져가는 중이었습니다. 황급히 부모와 함께 간절히 기도를 마치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유아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며칠후 아기는 생명을 잃었고, 더 충격적인 소식은 아기의 아버지가 살인자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인은 갓난 아기를 아버지가 심하게 흔들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오게 되었고, 그것을 의사가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자기를 보호할 어떤 방어기제도, 고통을 호소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아기”야말로 우리 사회가 함께 보호해야할 “가장 연약한 인간존재”(the powerless)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기”가 되셔서 세상에 오신 분, 곧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이땅의 “연약한 인생들”과 함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까지도 이같은 연약한 사람들 사이에 계시면서 스스로를 낮추며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을 향해 자비와 겸손으로 찾아오신 메시야 예수를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선지자의 눈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신비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성경중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광야에 야인처럼 살면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낙타 가죽의 옷을 입고,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외친 광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헤롯의 감옥에 갇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메시야라고 소개한 예수가 과연 ‘기다리던 그분’이 맞는건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하는가?” 아마도 세례요한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데, 어떻게 예수는 죄인들과 음식을 나누며 그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계신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메시야는 권능과 심판의 불로 세상을 정결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바로 오실 그분입니까? 아님,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나요?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본것을 요한에게 알게하라.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하여지고,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 (마태11:5). 예수님의 대답은 곧, 나는 지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연약한 자들과 함께있어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발이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연약한 자”(the powerless)가 되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경험하시고,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독일의 가장 오래된 도시중에 하나인 Trier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엔 4세기경에 세워진 콘스탄틴 바실리카라는 교회건물이 있습니다. 그 내부를 돌면서 그곳에 세워진 아주 독특한 예수님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수님의 온몸과 얼굴은 너무나 끔찍하게도 바싹 마른 모습의 예수형상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형상밑에 붙여진 이같은 제목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The Power of the Powerless.” 이같은 제목이 주는 멧세지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은 스스로를 비워(powerless)모든 연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the Power)을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대강절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며, 이같은 질문을 하게됩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