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열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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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 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마태복음 26장은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두 인물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 째 인물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서들이 수두룩합니다.

첫번째 단서. 기도를 마친 예수님은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과연 주님을 잡으려는 가룟 유다가 큰 무리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주님은 유다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과 요한복음 18장 2절 말씀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줍니다. 두 말씀 모두 지금 예수님께서 계신 감람산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때면 습관적으로 올라가셨던 장소입니다. 그렇게 제자들과 함께 자주 올라가던 곳이라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선 가룟 유다가 주님을 팔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평소와 같이 감람산에 올라가신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잡히시기 위해 일부러 감람산에 가신 겁니다. 이처럼 주님께선 어떤 목적을 향해 생명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신 겁니다.

두번째 단서. 주님은 칼을 빼 휘두르고 있는 제자를 말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7만명이 넘는 천사를 동원할 수 있단다.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면 되지만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있단다.” 사람들은 생사가 걸린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만나면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칩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눈 앞의 위기를 그냥 당하고 계신 겁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어떤 목적을 반드시 이루고자하는 특별한 열심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주님께선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신 걸까요? 인간 구원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의 이 열심 때문에 “내”가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겁니다.

본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두번째 인물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로부터 주님을 보호하기 위해 검을 빼어 휘둘렀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은 큰 무리였고 그들의 손에는 검과 몽치가 들려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잡으러온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제압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베드로도 칼을 빼어들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았을 겁니다. 지금 베드로는 자기 목숨을 걸고 주님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열심은 동기가 잘못 되었습니다. 그저 자기 판단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겁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수도 있었던 겁니다. 만약 주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이 베드로의 저항에 분노했다면 베드로 또는 다른 제자들까지도 죽거나 다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주님의 생명도 위험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제자들을 통한 교회 세우기 계획은 틀어졌을 가능성이 큰 겁니다. 사탄이 기뻐할 일이 생길 수 있었던 겁니다.

교회를 함께 세워가면서 성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베드로식의 열심인 겁니다. 베드로식의 열심들이 서로 부딛힐 때 교회가 시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비본질적인 일들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베드로식으로 집착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류의 일이 생기려고 할 때마다 바로 주님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 즉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가르쳐주신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자신 보다는 상대방을 나 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내 것보다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행동을 택해야 합니다.

시카고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만 열심을 다하는 참제자가 다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