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둥근 지구에서 땅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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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사도행전 1장 8절은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의 메시지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구절 때문에 로마제국주의 시대에 유대교의 아류처럼 여겨지던 기독교는 소아시아와 로마, 유럽대륙과 미주, 아시아에까지 이르는 범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구절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도대체 둥근 지구에 땅 끝은 어디일까?’ 물론 예수 당시의 과학적 지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창조자인 예수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신적 의식으로 알지 못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예수와 그의 말씀을 이해하는 당시의 사람들은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전이기 때문에 평평한 세상에 땅 끝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는가? 둥근 세상 안에 땅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바로 벗어난 지금의 터키나 요르단, 이집트를 땅 끝으로 생각했다거나 로마제국이 차지하고 있는 넓은 영토의 경계를 땅끝으로 여겼을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땅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와 복음전파의 영적 동기를 주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의 땅 끝은 현시대에 어디로 여겨야 하는가? 일부 선교단체들은 루이스 부시(Luis Bush)가 주장하는 10/40창(10/40 Window, 북위 10도~40도 사이에 있는 전세계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 속해 있는 나라들과 민족들이 예수가 명령한 “땅끝”이라고도 하고, 여전히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미전도종족이 ‘땅끝’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시대에 전향적인 입장에서 ‘땅끝’을 해석해본다면, 신약학자 박응천교수는 “메시야의 구원의 대상을 이스라엘로 국한 시켜 생각하는 유대 편협주의(Jewish Particularism)를 넘어, 하나님의 구원사의 지평이 온 땅의 끝까지 미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이어령 박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땅끝까지라는 개념은 기독교인의 세계관에 있어서는 앞선 개념이다. 경제적, 문화적인 모든 것을 봤을 때, 기독교인은 늘 땅끝이라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의식은 매우 넓었다. …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들이) 경제과 정치 지향적이 되면서 거꾸로 아주 편협한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곧 현대의 ‘땅끝’은 단순히 지리적 영역에서 어느 한 지점이나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적 배타주의와 편협주의를 벗어나는 것이고, 물질과 권력에 집착하는 잘못된 교회와 신앙의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땅끝’의 영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지리적 땅끝은 무의미하다. 미국과 한국은 실시간 소통을 하며, 단 몇 시간만에 남아프리카에서의 사건과 사고가 북유럽에서의 기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땅끝은 어디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시대의 땅끝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경계를 바로 넘어선 곳이며, 교회 담장이 바로 접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 속담대로 우리는 복음이 필요한 곳이 실제로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러나 성과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진 교회는 비행기를 타고 돈을 써가며 선교를 떠나야만 선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작 우리와 접하고 있는, 곧 우리의 경계 바로 밖에 있는 대상들 가운데는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 필요한 자들과 대상들이 너무 많다. 땅끝은 바로 그곳이다. 우리 일상에서 만나게 될 무신론자들과 각자의 일터와 직장, 학교에서 지나치게 될 불신자들과 반기독교인들이 지금 우리에게 땅끝이 아니겠는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지금 교회와 성도는 새는 바가지가 참으로 많다. 밖으로 나간들, 물이 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구멍을 막고 복음과 믿음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땅끝을 향한 가장 중요한 선교사역이라 믿는다. 해외로 선교를 나가는 것 만큼이나 이 시대에 요구되는 땅끝을 위한 새로운 선교적 마인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