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도를 보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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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편지는 위로와 소망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전달한 사람은 디도이다. 고린도후서 2장에 보면, 바울은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고린도교회는 바울에게 디도를 통해 서신의 응답을 보냈고, 이를 받고자 바울은 디도가 있는 마게도냐로 갔다.(고후 2:13) 그러나 바울과 그의 일행은 마게도냐에 가는 과정이 순탄하지 못했다. 고린도후서 7장 5절에 보면, 그들은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는 환란을 당했으며 밖으로는 다툼과 안으로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고 증거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낙심의 상황 속에서 마게도냐에 갔을 때, 디도를 만남으로 회복과 치유를 얻었다. 이에 바울은 “그(디도)가 온 것뿐 아니요 그가 너희(고린도교회)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후 7:7)고 말한다. 디도는 바울에게 편지를 받아 고린도교회에 주님의 위로와 소망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전함으로 격려와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디도는 단순히 바울의 편지를 전하는 동역자의 일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반대로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식을 전하기도 한 것이다.

디도는 위로의 메신저였다. 일방적인 소식을 전하는 것에 책임을 끝내지 않았다. 물론 바울은 지위로 사도의 위치에 있었지만, 그도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자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위로가 필요한 고린도교회에 바울을 보냈지만, 반대로는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사랑과 격려를 바울에게 전하게 하신다. 디도는 중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소망과 격려의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이다. 아무리 바울이 있어도, 제 아무리 고린도교회가 있어도, 디도가 있지 않았다면, 서로는 복음의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주고 받은 서신서들 속에서 디도가 차지하는 부분은 단 몇 구절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두 구절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지만, 때론 그런 사람들 가운데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회복을 허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사람을 통해, 응어리진 상처를 풀어 내게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조우한 지인을 통해, 아픈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에는 수 십 년간 직접적인 대화 대신에 메모지로만 소통했던 한 부부가 황혼이혼을 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부부 사이에 단 한 사람의 중재자가 있었다면, 결과를 다르지 않았을까? 서로의 관계 속에서 단 한 두 구절 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때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관계 회복과 치유를 줄 때가 있다.

관계회복, 곧 화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 사역의 기본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갈라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연결되고 조화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거룩한 관계성으로 세 분이 한 분으로, 한 분이 세 분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성한 관계성을 닮아 있는 창조 세계는 당연히 하나되고 함께 하며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에 디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화해자로 볼 수밖에 없다.

예수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여야 하고 함께여야 하는 것이 깨어지고 갈라진 지점에서 나타난다. 그 안에 하나님이 보내는 디도는 고난과 아픔의 사순절을 차츰 화해와 치유, 회복과 위로로 이끈다. 우리에게 보내지는 디도는 누구인가? 또한 우리는 싸우고 분쟁하는 곳에 어떤 디도의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 삶의 짧은 한 절 밖에 되지 않은 디도의 삶일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화해의 사역을 위해 우리는 그 거룩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사순절 기간, 주님이 원하시는 화해자의 역할이 디도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재발견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