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떠남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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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성경은 떠나고 머물며, 다시 떠나고 정착하는 여정의 반복된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와 타락의 문제로 천국과 같은 에덴동산을 떠나 동산 밖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인류 역사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는 시작에서부터 믿음의 출발을 보여준다. 야곱과 요셉도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집을 떠나는 것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신약으로 가면,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으로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자기 고향과 같은 예루살람과 유다, 사마리아를 떠나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거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곧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떠나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어느 목사는 교회 임지가 정해져도 이삿짐에 절반만 푼다고 한다. 또 다시 하나님이 떠나라 말씀하시면 곧바로 준비하고 떠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것은 목회자들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면 응답하고, 떠나라 하면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된 하나님의 자녀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와 뜻 가운데 있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가 떠나는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 주시고 그 가운데 기쁜 일을 채워 주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구약학자이자 설교가인 월터 브루그만은 ‘떠남의 복음’(Gospel of Departure)이라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이 주님 말씀에 항상 떠나는 준비를 하는 신앙적 정체성 속에서 복음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받아 떠나올 때, 바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 자체가 복음이라는 것이다. 물론 애굽과 바벨론에 있는 것이 편하고 좋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하는 애굽과 바벨론의 명령대로 복종하고 그들이 원하는 매일의 할당량만 채우면 그들은 세 끼의 식사와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얻을 수 있고 가족을 일구고 큰 걱정없이 살 수 있는데, 굳이 그 평안한 현실(애굽과 바벨론의 삶)을 두고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땅(하나님이 지시할 땅, 창 12:1)으로 가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떠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명령 자체는 ‘복음’이 될 것이라고 브루그만 교수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잘못된 익숙함을 느끼고 왜곡된 순종과 눈에 가려진 만족에 빠져 사단과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의 “떠나라”는 명령을 받으면, 우리는 “왜 떠납니까?”라는 반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도리어 브루그만은 바로 ‘떠남’의 명령은 ‘복음’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명령에 그저 순종하고 따라 광야로 나오면, 그 때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 내가 영적 무지와 무감각 속에 살았구나!’ ‘내가 머물던 곳이 영적 안일과 나태로 덧칠된 곳이었구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 가운데 ‘떠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면,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 떠나면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의 삶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사명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것도 정하지 않으신 우리의 영적 여정 속에 단지 떠나라’는 뜻에 길을 나선 자녀들에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신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사 53:12) 바벨론을 등을 지고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로 향하는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너를 앞에서 지키고 뒤에서 호위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떠나라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떠나라는 복음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떠나는 길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 주님은 앞에서 인도하며 뒤에서 지켜 주신다는 약속을 허락하신다. 떠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가? 떠나라. 떠남이 복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