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이 청결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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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요즈음처럼 청결에 대하여 강조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을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손소독제사용 등등 철저한 개인 위생 및 청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적 전염병이 있을 때 마다 주목받는 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 민족 입니다. 유대인의 위생 수칙은 14세기 흑사병 사태 때 가장 빛을 발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지만 유대인들은 대부분 살아남았습니다. 당시는 바이러스가 손이나 사람간의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 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희생자가 적었던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린 게 유대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 억울한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인 펜데믹 현상이 있을 때 마다 타 민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희생자가 적은 이유는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정결 예법을 철저히 준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율법에 따라 하루에 아홉 번 이상 손을 씻습니다. 식사 전 손을 씻는 방법만 20여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안도 청결하게 관리합니다. 가정이 곧 성소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보내기 위해 매주 대청소를 할 뿐 만 아니라 유대인의 주요 절기인 유월절을 앞두고는 몇 주에 걸쳐 식기와 생활용품을 끓는 물에 삶아서 소독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청결이란 단순한 개인 위생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매우 철저한 청결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 청결함에는 철저한 유대백성들을 향하여 청결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청결’이라는 말을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서 주로 사용된 용어로서 도덕적, 종교 의식적인 정결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청결’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말씀하신 이 청결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의식적’(儀式的) 청결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청결’ 곧 ‘내적 청결’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외적 청결이 아니라 마음의 청결이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청결이란 무엇입니까? ‘청결’이란 말을 헬라어로 ‘카타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깨끗한’, ‘순수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결한 사람이란, ‘동기가 순수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무슨 선행을 하건 순수한 마음의 동기에서 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타인을 돕거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등의 이타적 행위의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바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길거리에 놓인 모금함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장소에 있는 모금함에 기부금을 더 많이 냅니다. 기부금으로 지어진 병원, 박물관, 학교 건물에 기부자의 이름을 영구히 새겨 넣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선행을 베푼 사람을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의 무리를 쫓아내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있는 욕심들 때문에 마치 신앙의 장사꾼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찬양, 헌금과 봉사를 때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얻어내기 위한 장삿속으로 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어떤 것을 주시겠지?’ 하는 계산이 우리 안에 있을 때에 그 외적 모습이 아무리 선하고 영적이게 보일 지라도 그 마음의 동기는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의 은밀한 목적과 동기가 진실하며 사심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바로 청결한 마음입니다.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된 고상한 행동이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가 순수한 사람.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이러 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누구에게 어떤 행동을 해도, 저 사람이 왜 이럴까? 저 사람이 뭣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지? 라는 의구심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저 분은 정말 진실해’, ‘저 분은 참 신앙이 순수하셔’, ‘만나고 대화를 하면 마음이 참 편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말과 행동과 삶과 신앙의 모습이, 정말로 순수하고 청결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