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엇이든지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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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고별 설교입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죽음에 빼앗기는 슬픔과 3년 동안 따라 다니던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허탈감, 적의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로 제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우리가 극히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깊고 클 것입니다. 이렇게 크게 상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고별 설교 전체 흐름상, 이 기도는 마음이 기쁠 때 하는 기도라는 인상을 훨씬 강하게 받습니다. 23절 초두의 “그 날”은 예수님 부활의 날이요, 성령 강림의 날인 축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오늘의 이 말씀은 상처 입은 자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권면은 예수님이 지금 슬픔과 실의에 찬 제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원 하는대로 구하라”는 이 말씀은 바로 인생의 갖가지 쓴잔을 마시고 고통하는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의 음성이며 선물이기도 합니다.

엄격히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마음에 내키는 대로 기도하는 것은 정욕으로 잘못 구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기도의 본보기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놀라운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번 심각한 사건을 통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면 누구든지 한동안은 정서적으로 몹시 혼란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도 심하게 갈등하고 나중에는 믿음조차 허약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만한 여유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논리 정연한 어떤 표현도, 기도의 황금법칙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며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구하는 내용의 무게도 따져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주께서 다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구하라”는 의미의 동사가 무려 11가지 나옵니다. 각 단어마다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설교가 담긴 요한복음 14장~16장에 7번이나 나오는 “구하다”라는 동사는 모두 “아이테오” 입니다. 이 용어는 떼를 쓰다시피 하는 간청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26절 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아이테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에로타오)”에서 “아이테오” 와 “에로타오” 는 구별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떼를 쓰며 간청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에로타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서, 더욱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을 때는 “아이테오”가 제격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떼를 쓰듯 마음이 상했을 때, 떼를 쓰는 기도는 비록 그 내용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떼를 쓴다는 것은 얻어낼 때가지 계속해서 매달리는 것이며 잠잠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마음 상하는 일도 많이 당하지만 그 대신 상처 입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위로의 문은 참으로 크고 넓기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날마다 웃을 수만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하는 심정으로 다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