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중 집

423

이효섭(장의사/시카고)

 

어저께 숙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자넨가, 잠시 통화할 수 있겠나? 숙모와 의논한 결과 Independent Assistant Living으로 가기로 했네. 혹시 우리 집에 있는 가구나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가게” 이 짧은 대화는 저를 깊은 생각으로 빠지게 하였다. 숙모님의 건강도 연세 드시는 만큼 약해지시고 집 관리도 부담이 되는 최근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결정을 들으니 정신적인 지주가 쓰러지는 같이 갑자기 힘이 빠졌다.

요셉을 이집트로 보낸 후 이스라엘 민족의 이동이 시작된 것처럼 저의 집안도 이 숙부의 도미로 시작되었다. 숙부는 6.25의 화약냄새가 채 가시기 전 경남 합천군 삼가면 지리산 산골에서 유학의 기회를 얻어 십대를 벗어나며 미국에 왔었다. 초창기 유학생활 동안 흑백분리 흑인전용 화장실 사용을 강요받았었고, 뉴욕 맨하탄에서 변호사 개업했을 때 소수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가난한 동포들에게 봉사차원의 상담을 하였다가 파트너로부터 충고를 받았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본인의 유학을 위해 시골의 재산을 다 털어 재정적인 후원을 한 형님(저의 아버지)이 70년 초 사업이 어려워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격자 미국으로 초청하여 저의 가족이 도미한 후 연줄 연줄로 온 가족이 이 미국 땅에서 살게 되었다. 형님 동생 조카들이 한국에서 한 가정씩 한 가정씩 올 때마다 이민 생활의 길잡이가 되셨고 대가족의 기둥이셨다. 우리들 미국생활의 표본이었고 한때 글로벌시대를 단축시키며 살았던 분이 이제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큰 집을 정리하고 Assistant Living으로 가신다 하니 석양을 보듯 한 사람의 노후를 보는 저의 마음이 아려왔다. 작은 집의 가구는 50년 이상 애지중지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셨고 그 중 몇은 학생시절 스폰서 한 미국인이 준 가구라 물질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의미적인 가치가 아주 많은 것들이다. 대물림할 가치도 충분하나 사촌들이 수천마일 떨어져 살고 자신들도 집을 채워 살기에 부모님의 손때가 묻고 자신들이 자랄 때 사용했던 가구들이지만 필요가 없나 보다.

4년전 부모님께서 7주를 사이 두고 세상을 함께 떠나셨다. 장례를 치른 후 내가 부모님 집을 정리하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훨씬 신중히 생각하며 정리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많이 든다. 집 청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물품 중에 무엇이 가치가 있나? 염두에 두어야 했었다. 이민 초기 코메리칸의 낮과 밤을 일기처럼 쓰신 아버지의 수첩이, 직장에서 언어 소통이 어려우나 맡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한 노력이 인정되어 받은 공로패, 엄마의 손때 묻은 노리개, 혹은 즐겨 입으시던 한복들이 눈에 선하고 다 버린 것이 가슴 아프다. 이제 작은 아버지께서 밥그릇과 숟가락 이외는 다 정리를 하셔야 하는 것 같다. 팔순을 바라 보시는 고모님도 계시고 기약없는 세월 속에 다 함께 늙어가는 누나들과 형, 나도 있다. 우리 모두 핵가족으로 살다가 핵가족으로 간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많은 손실일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처분하고 싶지만 집집마다 의미있는 물건들 한곳에 모아 둘 수 있다면 후손들에게는 큰 정신적인 유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됨은 무슨 연유일까?

내가 아주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혹은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가곤 했었다. 시골에 가면 종갓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며칠씩 머물다 온 기억들이 그 당시엔 아무 것도 몰랐지만 이제 되돌아보니 아름다운 추억이고 자긍심과 자아확립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종갓집이란 시대의 변천과 미국 이민의 삶 속에서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물이 다된 단어일 것이다.

문중 집이라는 단어가 있나 하고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소설 속에 문중 집이라는 어휘가 쓰임을 발견했다. 집의 소유주가 한 개인이 아니고 많은 가족이 주인이 되며 여럿이 결정권을 행사 할 수 있는 소유 방법이다. 문중 집이란 미국에서 Family Trust House 인데 장점이 많은 동산, 부동산의 소유 방법이다. 세월이 지나며 우리의 가슴과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부모님의 모습과 행적처럼 훗날 우리의 모습도 행적도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생애의 숨결과 손길이 담겨있는 한 두 가지의 유품이라도 보존되어 있다면 그를 매체로 세대간의 맥이 이어지지 않을까? 문중 집이 있다면, 혹은 문중 방이라도 있다면 저물어 가는 우리 이민 선구자들의 삶의 흔적들을 모아 둘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자연스럽게 얘기 할 자료가 되지 않겠나?

작은 아버지께서 “너희들 중에 아무도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으면 모두 다 Salvation Army(구세군)에 주겠다”고 하셨다. 미주에서 새로이 뿌리를 내리는 가문의 역사들을 가능한 보존하고 싶다. 그래서 가문의 공간이 필요하다. 문중 방 혹은 문중 집… 훗날 엄마의 손때가 남아있는 곳, 아버지의 유품이 있는 곳은 마음의 고향이 되리라. 나이든 자식들도 어린 시절로 돌아 갈 수 있는 곳, 우리의 자손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간접적으로라도 만날 수 있는 곳… 이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숙부님의 전화를 받고 난 후 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