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의 자유 Liberty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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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시카고

이민 초창기 전문직이 아닌 사람은 더욱 고생을 많이 하였다. 한국에서는 자기를 펼치며 살았더라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하여 야간 청소를 하든지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고 남녀 모두가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뛰었다. 보통 아내는 남편보다 일이 더 많았다.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신문이라도 읽는 시간을 가지는데 아내는 바로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정말 힘들게 살았다. 그래도 미국이 좋단다. 미국의 자유가 좋단다. 전에는 남의 눈치 보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옷, 자동차, 아파트나 집, 학교 어떤 것이든지 비교가 되어 어른이나 아이들이 마음에 자유가 없었지만 여기서는 이런 면에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다.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다.

미국이 처음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 넓은 대륙이 발견되자 영국이 식민지를 개설하고자 1607년 일차 개척자가 도착하여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을 건설하고 그 후 계속 사람이 옮겨 왔다. 청교도들은 국교의 박해를 피하여 화란으로 갔다가 새로운 땅의 자유를 찾아 1620년 출발하며 목적지는 버지니아였으나 풍랑에 밀려 도착한 곳이 Cape Cod로 제임스타운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대륙이 버지니아 뉴 잉글랜드 펜실베니아 뉴욕 등 13개 영국식민지가 되고 각 대표자를 뽑아 미국 대회를 만들었으나 영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영국은 식민지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제한을 가하였다. 1차 버지니아 대회에서 영국 죠지 왕에게 부당한 세금정책에 대해 항의를 했으나 왕은 더 강경하였다.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 리치몬드 성요한 교회에서 모인2차 대회는 나중 대통령이 될 워싱턴, 제퍼슨 등 120여명이 영국과 갈등 완화를 의도하였다. 연사들 중에 변호사 패트릭 헨리는 그동안 자기는 버지니아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사람이라며 미국이 하나인 것을 천명하고 미국이 영국의 위협에서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해 군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며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로 결론지었다. 회중은 숙연해지고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그것이 미국 독립 선포의 도화선이 되어 결국 독립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내고 자유를 쟁취하였다.

자유는 쉽게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군인들이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쳐서 획득한 것이다. 이를 뉴멕시코 군사학교 공군대령 Walter Hitchcock이Freedom is not Free로 표현하여 민주국가에서 누리는 자유는 군인들의 모험과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 자유를 위하여 생명 바친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군인들에게 자유를 위한 희생을 격려하였다. 이 구절은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의 한 벽에 새겨져 있어 낯선 땅 한국의 자유를 위하여 38개월간의 전쟁에 참가한 미군 150만과 33,652 전사자에게 경의와 추모를 표하고 있다. 오늘 한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바로 이런 희생에 의한 것이라 한국은 미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미국은 미국만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불사한다. 독립전쟁에서 아프칸전쟁까지 수많은 전쟁에 참전하여 120만여명이 생명을 잃었고 지금도 자유를 위한 것이라면 생명과 재산을 기꺼이 내어놓고 있다. 미국 독립 기념일을 지나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위한 미국의 헌신에 감사하는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