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뒤꿈치만 쳐다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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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어느 날 오후 신촌역 앞에 한 노숙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는 검정색 고무줄 바지에 낡은 녹색 점퍼 그리고 더럽고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는 “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라고 적힌 팻말도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진짜 노숙자는 아닙니다. 한 신문기자가 ‘거지체험’을 하기 위하여 설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신촌역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자를 흘깃흘깃 쳐다보자 그녀는 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묻고 팻말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제 그 기자의 시선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와 운동화만 보였습니다. 하이힐은 빠르게 지나갔고 이따금 할머니 할아버지의 구두가 멈칫하고 팻말 앞에 서서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멀어져 갔습니다. 거지체험을 진행하는 동안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뒤꿈치만을 쳐다 보았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지라.”(행 3:1-2) 기도 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올라가는 베드로와 요한 앞에 한 걸인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지라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성전을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누군가의 발걸음이 자신 앞에서 멈추면 이내 손을 내밀어 동전 몇 닢이라도 동냥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멈추어선 그 발이 그냥 떠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던 불쌍한 영혼이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그 걸인은 그날도 고개를 숙인 체 동냥하기 위해 꺼내놓은 동전 그릇 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뒤꿈치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성전 미문 앞에 있었던 그 걸인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은 어떤 병도 고치시고 심지어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도 일어서게 한다는 소문을 왜 몰랐겠습니까? 그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렵사리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실망합니다. 그분을 만나서 걷고 일어서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그의 시선은 이제 사람들의 발뒤꿈치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걸인 앞에 멈추어선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말합니다.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라!'(행 3:4)  사람들의 발뒤꿈치만 쳐다보고 있는 그 걸인에게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성전 앞에 앉아 있던 걸인은 영적으로 우리를 표상합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매일 같이 성전에 나온다 할 지라도 사람들만 쳐다봐서는 여전히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일 뿐입니다. 그 말은 결코 변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새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걷게 하시고 뛰게 하시고 찬미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분 뿐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뒤꿈치가 아니라 예수 그분의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