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을 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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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삼국지에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나온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서 시골 농사 짓는 허스름한 초가집 같은 곳을 3번이나 찾아가 정성을 다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삼고초려 이상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모시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삼고초려의 표현 중에 ‘삼고’(3번 찾아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초려’이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풀로 지은 집’ 곧 초가를 3번이나 간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대궐같은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양새는 고풍있고 위치는 풍수지리로 명당의 자리에 있는 곳에 살 것 같은데, 삼고초려에서는 그런 설명은 없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제갈량은 그냥 초가에 살고 있었던 것이고, 유비는 그 낡아 빠진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그렇게 수고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SNS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굳이 사람 만나 일을 처리하지 않아도 세상이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으니,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관계는 어쩌면 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심과 불신이 많아 진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신뢰와 믿음을 타인에게 주기에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진정으로 사람을 얻어야 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더욱 근심이 많다. 전도는 되지 않는다. 숫자가 늘어나는 교회는 타교회 신도들의 수평이동뿐이다. 목회자 세습과 성추행, 탈세, 탈법의 행위 등등 버젓이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는 몇몇 교회와 목회자, 신도의 모습으로 전체 기독교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너무도 힘든 곳이 되어 가고 있다. ‘믿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믿음’을 주지 못하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현대 교회가 사람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다음과 같은 충고를 준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장 19절) 그리고 그 이하 절에서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처럼 보이는 것은 유대인을 얻기 위함이고, 약한 자가 아니지만 약한 자처럼 보이는 이유는 약한 자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사람을 얻고자 소아시아(현재의 터키)와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저 찾아가기만 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그 사람의 눈높이와 지위, 자리에까지 내려갔다. 세상에 가장 누추한 곳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얻기 위해 바울은 그곳에 찾아가 그들의 마음을 얻어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한 번 가면 다시 찾아가기 싫은 초가를 3번이나 찾아간 것처럼, 바울도 사람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사람을 얻기 위해 내려가고 낮아지며 자신을 비워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영적 비만에 빠져 있고, 그리스도인은 내적 안일함에 빠져 있다. 사람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배를 채우고 자기 자식을 보호하며 자기 복을 누리는 것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 타인이나 이웃, 세상을 보는 것은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람을 얻고자 타인과 이웃, 세상을 향해 발 벗고 나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 교회와 목회자들이 세상에서 명상하고 요가하며 마술을 부리는 것을 이단시 취급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 종교적 만족을 위해 이미 그것들을 티나지 않게 하고 있지 않는가? 자기 마음을 얻기 위해 명상과 다르지 않은 거짓 기도를 하고, 가족의 안위만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뒤틀고 왜곡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병고치는 마술이나 미래를 맞추는 요술 따위를 잘 하는 목사가 좋은 목사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만 남아 있는 곳이 점점 교회가 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바울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을 얻는 교회와 사람의 마음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채워지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얻는 일에 전념하자. 그것을 잃으면 신앙과 교회는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