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하(山下)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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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한가지 특별한 일은 어느 날 교수님들이 하나같이 이마에 검은 재를 묻히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모습였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맞이해 이마에다 재를 묻혀 십자가 성호를 그려 놓았던 것입니다. 이 같은 의식은 당시만 해도 한국 교회엔 다소 생소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에선 사제가 성도들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주는 대신, 교회에 모인 회중들의 머리위에 재를 뿌리는 것으로 이 의식을 대신하여 치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같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기도하던 풍습은 성경과 낯선 풍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슬픔과 회개를 표시하는 뜻으로 머리에 재를 얹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제 금주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교회는 앞으로 40일간의 사순절(Lent)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성도들은 갈보리산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신 예수님의 그 행적을 따라,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맘으로 죄를 회개하며, 새로이 신앙의 부흥을 회복하는 의미 깊은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예수님이 친히 자신이 당할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산상(山上)에 올랐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 17:1-13, 막 9:2-12, 눅 9:28-35) 그 곳 산상에서 제자들은 함께 기도하던 예수님의 형상이 마치 천사처럼 변형된 모습과 함께 하늘로부터 들렸던 큰 소리를 듣게되는 신비한 체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평생 잊지 못할 황홀한 경험이 되었고, 베드로는 이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벧후1:17-19) 그것은 주님과 나눈 변화산에서의 특별한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천사처럼 변모한 주님과 함께 그곳 산상에 남아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영원히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면 여기에 초막을 짓자!”고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제안이 너무나 황당해서 였을까요, 누가복음에서는 이를 가르켜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라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눅9:33) 사실, 며칠전에도 베드로는 주님에게서 “사탄아 너는 내뒤로 물어가라!”는 가슴 철렁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십자가를 지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앞을 가로막아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곳 산상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들이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져 있을 동안에,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별세”(departure)에 대해 눈의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을 오르실 예수의 고난을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홀연 잠에서 깬 베드로는 지금은 떠날 때가 아니라 “머물 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황홀한 산상의 경험에 취해 있는 베드로를 깨워 “하산하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산하(山下)에서 예수의 일행이 마주쳐야 했던 첫 번째의 일은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귀신에 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그 아들을 괴롭히던 귀신을 쫒아내며, 그 아비의 마음을 치료하던 주님이 서계야 했던 곳은 바로 믿음없고 패역한 세대의 한 가운데 였던 것입니다. 신앙이란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산상에 있는 피안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신앙은 오히려 치열한 현실을 피하기 보단 그것을 마주하여 선한싸움을 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신앙일수록 주님과 함께 “떠남”을 배워가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평안에 익숙해져서 “안주”하려하는 순간,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젠 산하로 내려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듯, 주님을 따르라고 권고하십니다.

이제 사순절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이마위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든, 머리위에 재를 뿌리든 중요한 것은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나의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인생의 여러 교훈을 체험했습니다. 죽음이 너무나 허망하고 예고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며, 우리는 죽음앞에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그리고 성도가 병상에서 죽어가는데 제대로 손한번 잡아드리지도, 마지막 유언조차 듣지 못한 불효자요, 못난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머리위에 재를 뒤집어 쓰며, 인생이란 그저 “먼지”라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山下로 분주히 내려가시며 함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앞서가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직 낮이니 해야할 일이 남아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사순절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종함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