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식적인 인간과 비상식적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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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목사

미국 지성인들에게는 고전과 같은 책으로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 신학자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것이 있다. 미국이 경제적 공항에 허덕이고 유럽은 나치와 히틀러의 전체주의 정권에 휩쓸려가려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미국의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사회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책이었다. 즉, 개인 한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익과 혜택을 지켜주고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사람이 모여 한 사회를 구성할 때, 그 구성체는 계급과 인종, 민족, 종교 등으로 인해 집단적 이기심을 드러내고 정도에 벗어난 충돌과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100여 년 전의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연한 사회적 분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다른 세상의 집단과 차별 없이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요즘 누가 교회로부터 도덕을 찾겠는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를 외쳤던 목사는 성추행의 비상식적 범죄 행위로 한국교회의 도덕성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피땀으로 모은 헌금을 카지노에 쏟아 부는 비도덕적인 목회자나 자신의 비자금을 돈세탁하기 위해 교회 헌금 시스템을 이용한 장로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도덕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도덕적인 그리스도인이나 도덕적인 교회까지 바라지 않는다. 제발 상식만이라도 지키는 교회와 공동체의 기본이라도 지키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한다.

먼저는 정한 법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교회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법을 지키지 않는 세상 사람을 비난한다. 일부 이민교회에는 법 위에 사람이 있고, 교회 규례 위에 종교적 협박과 집단적 패권주의가 있다.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나 장로가 말하는 것이 교회법이고, 설교를 통해 쏟아진 저주가 곧 성도들이 지켜야 할 율법이며, 한 가문이 교회를 차지해 공동체를 이리저리 뒤흔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비상식의 끝을 보여준다.

또한 교회는 “예수는 복음”이라는 신앙을 보수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새 교회는 비상식적 복음, 곧 다른 복음에 빠져 버렸다.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과 이상한 사이비 기도모임에서 하는 기도형태를 좇아가려고 한다. 더 높은 신앙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할 교회와 성도가 인간의 저질스러운 종교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곳에서 만족을 누리고자 한다. 그곳에서는 곧 종말이 온다고 한다. 자기들 모임에 와야 치유 받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666의 베리칩을 받지 말고 휴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의 이런 주장을 듣고 세상은 기독교의 복음은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교회도 가지 말아야 할 금기 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교회와 신앙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제 3자가 되어, 그런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자들의 행태를 보라. 비상식을 넘어 사회화되지 못하는 컬트화된 종교의 공포마저 느껴진다.

교회와 복음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더 나아가 도덕성까지도 지켜내어야 한다. 인종차별이 있는 곳에 이방인이었던 가나안여인까지도 사랑하셨던 예수의 복음이 선포되도록 교회를 나서야 한다. 돈과 물질이 판을 치는 황금만능시대에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성도들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적 신앙이요, 바른 신앙의 길이다.

도덕성을 회복하자고 써야 할 글에서 상식만이라도 되찾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그러나 상식부터 회복해 가는 교회에서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리라 믿는다. 상식적인 성도, 도덕적인 그리스도인, 그리고 거룩한 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오직 예수인 복음을 붙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