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실도 창조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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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한마음재림교회/시카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죽음, 실연, 이혼, 별거, 자녀의 독립 등 다양한 이유로 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깊이 사랑하고 의존했던 대상을 잃었을 때 경험하는 상실감은 매우 큽니다. 사랑의 대상을 상실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심신의 저항력도 약해져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과학적 자료를 통하여 증명되고 있는데요. 토마스 영에 의하면 배우자를 잃은 55세 이상의 남녀 4,486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배우자의 사후 반년 이내의 사망률이 가장 높고(동 연령의 평균적 사망률보다 40% 높음) 그 후에 차츰 감소하여 동 연령의 평균적 사망률에 접근해 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상실의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속에서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는 파괴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창조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에너지가 파괴적으로 작용되면 견디기 힘든 상실감으로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이 상실의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오히려 상실감을 극복하고 인생의 큰 성취를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상실과 고통 너머”라는 책에서 저자인 폴 투르니에는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이 생산하는 창조적 에너지도 커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피에르 렌취니크 박사의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라는 논문을 읽고 영감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논문에 의하면 세계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정치가, 사상가, 예술가 등 위대한 위인들이 거의 모두 고아였다는 것입니다.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조지 워싱턴, 세계 정복을 꿈꿨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해상을 장악함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는 기초를 놓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고아였습니다. 공자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데카르트는 한 살 때, 파스칼은 세 살 때 각각 어머니를 잃었다고 합니다. 예술가들 가운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였고 바흐는 고아였습니다. 루소, 사르트르, 카뮈, 에드가 엘런 포우, 단테, 톨스토이, 볼테르, 도스토예프스키 등도 모두 고아였답니다.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이 글을 읽고 본인 자신도 고아 출신이었던 폴 트루니에는 “상실과 고통 너머”라는 책을 통해 상실도 창조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셨습니다. 그분이 잃어버린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자녀를 잃어 버리셨을 때 그분이 경험했던 상실의 고통은 온 우주를 상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상실의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상실의 고통을 구원의 능력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능력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버린 힘과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그 에너지는 바로 십자가의 에너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능력은 힘이요 곧 에너지입니다. 능력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나미스”입니다. 이 두나미스에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는 것 같은 엄청난 에너지가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머리를 뚫고 가슴까지 후벼 파던 가시관의 찌름과 매정한 채찍질로 살점이 뜯겨 나가던 고통, 못박힌 손과 발이 십자가 위에 매달린 육신의 무게를 버티기 위하여 갈갈이 찢겨지던 아픔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자를 잃어 버린 상실의 고통이 십자가의 고난보다 더 크다는 것을 그분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구원하신 가장 강력한 사랑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