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로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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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Anyone who is joined to Christ is a new being.” – 2 Cor. 5:17

생명은 운동하며 성장합니다. 비가 오고 따뜻한 날씨가 찾아와 아내와 함께 가계에가서 꽃을 사 집주위에 심었습니다. 아침마다 밖으로 나가 어떻게 자라고 있나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씨가 가슴속에 뿌려지고 나서는 그의 삶은 쥐죽은 듯 잠잠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식물이 땅을 뚫고 잎을 틔우듯, 따뜻한 봄 햇살에 어느덧 가지뿐이던 나무들이 온통 푸르름의  옷을 입으며,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망울은 온세상에 짙은 향기를 내뿜듯, 성도란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새 생명의 약동함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바로 성경에 소개된 바울과 실라라는 인물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하를 소동케하는 이들”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들에겐 옥에 갇히는 고난도 그들 심령안에 피어난 소망과 기쁨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한밤중에도 그들의 입가에선 감사의 기도와 찬양이 터져나왔던 것입니다.

 

이주연 목사의 “산마루 묵상”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한 철학자와 도둑놈이 함께 교도소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되었답니다. 어느 날, 달 없는 그믐밤을 틈타 그들은 탈옥을 시도했습니다. 어두운 지붕위를 살금살금 기어가다가 그만 도둑놈이 발을 잘못 디뎌 기왓장이 떨어졌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교도관이 “거 누구야!” 외쳤답니다. 그러자 도독놈은 “야옹!” 하였습니다. 얼마 후 이번엔 철학자가 발을 잘못 디뎌 기왓장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교도관이 “거, 누구야!” 외쳤습니다. 그때 철학자가, “고양이예요!”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만 그가 교도관에게 잡힌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신앙인의 가슴속에 뿌려진 예수님의 생명의 씨는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합니다. 그것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나 마음속 생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가 새롭게 변화를 입어, 그 정체성의 물음앞에도 “야옹!” 이라 대답하듯, 머릿끝부터 발끝까지 예수의 생명에 물들어 있는 것이 신앙인 입니다.

 

한 교우의 가정을 방문했다가 거실 한가운데에 걸려있는 멋진 가훈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망.애”(信.望.愛) -믿음, 소망, 사랑-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는 가르침 였습니다. 아버님이 한문으로 정성스럽게 써서 가족에게 남겨준 귀한 가훈였던 것입니다. 심방을 마치고 나오면서 저도 맘속에 어떤 가훈을 자녀들에게 보화처럼 남겨줄까 생각하다가, 성경의 한 말씀이 맘속에 떠올랐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렇지! 예수님의 생명을 가슴속에 간직한 인생은 분명, 그 존재로부터 거듭난 생명이지! 그러기에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무슨 일에나 감사’하는 삶이지! 무슨 일을 만나든, 고양이가 “야옹!”하듯, 온 가족의 입가엔 언제나 “아멘! 할렐루야!”가 떠나지 않는 삶이 진정한 신앙인이지! 이렇듯 가족들과 나눌 가훈을 생각하며 불현듯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