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해를 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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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선한 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미야 33:2-3

종교가 있든 없든 누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앞에 주워진 새로운 한 해를 경건함과 엄숙함으로 맞이하고자 함입니다. 지난 해에 살아왔던 많은 잘못과 실패를 회개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삶의 새로움은 다름아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황폐한 묵은 땅을 기경하지 않고는 새 생명의 성장과 열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19년 새해 벽두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제단조차 “황금돼지”로 바꿔버린 역겨운 기복의 신앙의 기세가 가련한 영혼들을 실족케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감고 물에 뛰어 들어야할 소경된 선생들로 인해 세상이 더욱 시끄럽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한 “요구 사항 목록”(wish list)을 들고 거기에 복채를 얹어 무당에게 기도하듯 우리들의 신앙은 벧엘의 황금 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던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같이 변질되었습니다. 공의(公義)와 인애(仁愛)를 구하고 그것을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까맣게 잊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이유가 오직 “나 중심”에 있을 뿐 “주님 중심”에 있지 않은 듯 합니다. 흔히 “내 교회”는 있어도 “주님 교회”는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2019년의 켈렌더로 달력을 바꾼다고 하여 새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60년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복이 저절로 굴러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변화와 새로움으로 인해 새 해가 됩니다. 우리에게 새 영을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옛 것에 머물지 않도록 날마다 새롭게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주님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가르켜 속사람의 변화라고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4:16)  새해 아침, 순결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새해에도 분명 하나님의 손 길안에 우리 인생의 여정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 중에도 좌절하지 않는 심령으로 살아 가도록, 어떤 실패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도록, 끝없는 죄악의 유혹과 세력앞에서도 깨끗한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마치 시인의 기도와 같이 두 손을 모아 간절히 이같이 간구합니다: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헤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이정선 시인 1941-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