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령은 어디에 임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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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 니이다” (마 16:16) 베드로의 대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눈 앞에 서 계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고백이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예수님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을 알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 16:17)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 하심을 받아 말한 것도 잠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서 베드로에게 얼마나 강한 육신적 자아가 있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나누신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본인의 죽으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러한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베드로가 잠깐 성령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것도 잠시, 그의 마음속에 육신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이 가득 차게 됨을 보고 주님께서 노를 발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성령이 충만한 고백을 했었던 베드로에게 그 잠깐 사이에 그 성령의 충만함을 어디로 가고 사람의 생각, 육에 속한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을까요?

이 상황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어떤 마음에 임하시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 육의 마음으로 가득 찬 대답을 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self) 자기는 하나님이 모든 지식 있는 피조물에게 만들어주시고 부여하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가 우리 각자의 자기를 매일 그분께 드리는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헌신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중에 가장 큰 영광을 받았던 루스벨은 슬프게도 천사들의 장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영광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의 능력과 자기 자신을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틈타 인간의 ‘자기’를 유혹하여 너도 하나님 처럼 높아질 수 있다는 거짓말로 사람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자기의 저주를 이 세상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자기는 악한 영에 물들은 저주의 자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성령이 산다]의 저자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타락한 자기의 모습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첫번째 자기의 (self-will), 두번째 자기과신 (self-confidence), 세번째 자기예찬 (self-exaltation)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나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의 말은 자기과신이었고 자기예찬이었습니다. 아마도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나 처럼 용감하고 멋진 제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날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자기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와 자기과신과 자기예찬으로 가득한 우리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나를 부인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자랑 할 것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를 떠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부르시고 동행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는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쳐내지 않으시고 그를 숯불로 정결케 하시고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자신들이 내가 아무것도 자랑할 것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될 때 그것이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여 자신을 부인하게 될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거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