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령을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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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마치 친구가 친구에게 하듯 하늘 아버지와 친밀하게 교통하는 것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하는 기도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하루에 세번씩 ‘다벤,’ 즉 기도를 했습니다. 저녁기도를 ‘마이아리브’라 하고, 아침기도를 ‘샤카리트’라 하며, 오후기도를 ‘민하’라 하였습니다. 매일의 기도를 모아 만든 책을 ‘시두르’라고 하였는데 시두르는 ‘차례’라는 뜻으로 순서에 따라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듣기에 예수님의 기도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와 달랐고, 사실 그들이 들어왔던 어떤 기도와도 달랐습니다. 틀에 박힌 말들로 하나님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비인격적인 분처럼 생각하고 드린 형식적인 기도에는 기도의 특징이 되어야 할 진실성과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한 것 처럼 기도할 수 만 있다면 자신들도 큰 능력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가르침을 주십니다. 먼저 주기도문(눅 11:2-4), 두번째 밤중에 도착한 친구의 비유(눅 11:5-8) 그리고 세번째로 성령의 약속(눅 11:9-13)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에 대하여 세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 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롬 8:14-17).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진흙, 창조주와 피조물, 주권자와 복종자의 관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족관계로 유대교가 의미하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자(父子)관계로 끌어 올리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호칭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자녀에 대해 베푸는 아버지의 무한한 긍휼과 인자에 대한 신뢰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가르침은 밤 중에 도착한 친구의 비유(눅 11:5-8)입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자기 집에 친구가 찾아왔지만 그를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밤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이웃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 간청합니다. 귀찮아 하는 이웃에게 끈질기게 요구한 덕에 결국 떡을 받아냅니다. 이 비유의 가르침은 기도하는 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기도할 때 가져야 할 신실함과 근면을 독려하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가르침은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진정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눅 11:13) 예수님께서 매우 단호한 어조로 성령을 구하라고 명령하신 사례가 있다면 바로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눅 11:9-13)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위해 간청할 것을 열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구하라”는 의미의 동사 6회, “구하라”를 강조하시기 위하여 “찾으라” 2회 사용, “두드리라”를 2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끊임 없이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기를 소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과 나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간절함으로 끊임없이 구하는 신실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성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