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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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자신의 생각과 감정 또는 경험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우리는 말, 곧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언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미개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언어까지 생각한다면 2,500에서 많게는 3,500종류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 신랑과 경상도 신부가 깨가 쏟아지는 신혼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국수를 먹다가 싸움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부는 국수라고 하고, 신랑은 국시가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한참을 싸우다가 결판이 나지 않자 이웃에 사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 국수와 국시가 다릅니까?”

“예 다르지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럼, 밀가루와 밀가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예, 밀가루는 봉지에 담은 것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은 것입니다.”

“봉지와 봉다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예, 봉지는 가게에서 파는 것이고 봉다리는 점빵에서 파는 것입니다.”

“그럼, 가게와 점빵은 어떻게 다른가요?”

“예, 가게에는 아주머니가 있고 점빵에는 아지메가 있습니다.”

“그럼 아주머니와 아지메는 어떻게 다른건가요?”

“아주머니는 아기를 업고 있고, 아지메는 얼라를 업고 있습니다.”

“그럼, 아기와 얼라는 어떻게 다른건가요?”

“예, 아기는 누워자고, 얼라는 디비 잡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좁은 땅에 살면서도 호남, 영남, 충청, 강원 저마다 다른 지방의 사투리가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여러 다른 말과 언어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언어의 갈라짐, 그리고 그 언어의 갈라짐과 함께 나누어진 사람들, 이것은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볼 때 명백한 죄악의 결과였습니다(창 11:9).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여 높은 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언어의 혼잡은 즉시로 사람들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서로 하나가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자들이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뭉쳐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또 다른 문제로 사람들이 분열되고 흩어집니다. 그것은 불통 곧 공감의 부재입니다. 비록 같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소통이 되질 않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같은 말을 해도 서로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분열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벨탑 당시에는 언어의 분열로 인해 사람들이 흩어졌지만 오늘날에는 소통의 부재로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언어의 혼잡을 초월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양으로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방언으로 설교를 하자 바대, 메대, 엘람, 또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자기들의 말로 그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행 2장). 성령의 역사는 언어의 단절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십자가로 하나되게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우리의 삶에 임재하게 될 때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