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손바닥 안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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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손바닥 안에 작은 ‘스크린 (Screen)’과 이를 퉁기는 손가락이 데이터와 정보의 한계를 넘어 자기중심의 ‘라이프 스타일 (Life Style)’을 창조하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세계로 감정과 정서를 지나 영적인 분야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버 (Cyber)’ 공간으로 이끌어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손 바닥안의 하나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대, 알고 싶은 것은 서슴없이 작은 스크린 묻고 원하는 것을 골라 입맛에 맞으면 진리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련 없이 내 버립니다. 원하는 사람들과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연결하여 소통하고 밖에서도 자신들끼리만 만나고 어울립니다. 이런 사이버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호기심 안에 숨어있던 흥미와 관심이 열정적으로 자극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면 ‘프라이버시 (Privacy)’를 원하고, 편리를 원하고, 교회에  헌신 덜 하기를 원하고, 알려지지 않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자기실현하며, 스스로 자기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음악의 연주자나 가수와 연결합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설교자를 선택하고, 그의 설교에 만족하고, 그의 서적만을 골라 심독하며 빠져 들어갑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설교자나 간섭하는 ‘시니어 (Senior)’들을 향해 상상 할 수 없는 증오심과 이해 할 수 없는 반응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발하며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고, 한 목자에게 있는 한 무리의 양이며, 한 왕국에서 같은 왕을 모실 백성들입니다. 한 가족이며, 한 기초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같은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한 공동체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정체성 (Identity)’이고 생명이며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이나 밖에서 차를 나누거나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하는 것들을 교제라고 하지만 실은 교제는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믿는 순간 – 거듭나는 순간, 구원 받는 순간,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순간,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순간,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에게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순간, 성령을 소유하기 시작하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반드시 교제를 시작해야 하고 이는 선택의 옵션이 아닌 필수 불가결한 호흡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사역을 기본으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의 위대한 대 제사장이신 예수께서 반복해서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 그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거듭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우리가 믿고 거듭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이루어 졌고, 그 후에도 계속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붙어 있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교제를 계속해야 합니다. 연결과 하나 됨을 가르치며 서로 만나 교제를 요구하시는 우리 생명의 주인이 시며  살아계신 하나님, 이를 거절하고 혼자만의 공간인 ‘사이버 세계’로 우리를 유혹해 지배하려는 ‘손바닥 안의 하나님’ -. 이제 우리는, 이전 세대들이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유혹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손바닥 안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교제하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