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십자가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978

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로마사람들에게는 극악무도한 죄인을 매 달아 죽이는 끔찍한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참혹한 십자가를 통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까요? 그런데 베드로전서 3장 20절 이하에 보면 십자가를 노아의 홍수에 비유한 대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응징하기 위해 심판의 방법으로 홍수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배에 탄 사람들에게는 홍수가 구원의 방편입니다. 홍수가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지만, 방주 안의 노아의 식구들에게는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로 따지면 금주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내가 다 이루었다!’하시고 떠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의도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고유한 속성의 첫 번째가 공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거룩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절대 죄를 묵과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악을 간과하실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죄나 악은 응징하셔야 합니다. 반대로 선은 상을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모든 인생이 죄인이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왜 죄인입니까?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인입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우리 스스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택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고 선택의 여지없이 내 부모의 자녀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예라는 이유 때문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모두가 아담의 후예로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6:23)고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제 2의 속성은 사랑입니다. 공의만큼 사랑도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부를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으로도 부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그러면 이제 어떻게 됩니까? 공의를 내세워 모든 죄인들을 다 심판하자니 사랑에 저촉이 되고, 사랑을 내세워 죄인들을 무조건 용서하자니 공의에 걸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딜레마입니다. 공의를 관철하면 사랑을 범하게 되고 사랑을 관철하면 공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제 3의 속성이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하는 십자가라는 해법을 착상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관철하시며 우리를 완벽하게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의인으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저주를 한 몸에 받아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이 말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시며 하나님께 버림받아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철저하게 예수님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허물을 호리도 남김없이 응징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고 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그렇게 죽이심으로써 공의를 관철하셨고, 그 한 분을 죽이심으로써 전 인류를 구원하셨기에 사랑을 관철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연출한 인간 구원의 드라마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전히 관철된 구속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