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기 코끼리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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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갈5:1)

“Baby Elephant Syndrome” (아기 코끼리 증후군)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글의 울창한 숲속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코끼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의 상징을 보게 됩니다. 6톤이 넘는 엄청난 코끼리의 위엄앞에 그를 상대할만한 어떤한 것도 존재하지 않을 가히 천하무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끼리의 뿔에 받힌 나무는 한순간에 뿌리조차 뽑혀나갈 정도로 엄창난 힘을 자랑합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에 사람에게 잡혀온 코끼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위해 그의 뒷다리를 밧줄에 묶어 나무에 매어 놓습니다. 그가 아무리 도망치려해도 아직 힘이 모잘라 밧줄을 끊을 수 없는 것을 알고, 결국엔 그것을 포기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코끼라가 성장한 후에도 이런 어릴적 경험으로 인해 여전히 체인에 묶인 채 저항없이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과거의 실패에 갇혀 자유를 잃어 버린 채 살아가는  “아기 코끼리 증후군” 의 모습입니다. 실패한 과거가 만들어논 거짓된 멍에와 굴레에 매여 자유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성경에서도 이같은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430년간의 기나긴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발로 밟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약속된 현실앞에서 그들은 이같이 반응하였습니다: “우리는 안돼!”  “이곳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야!” 라며 자포자기하듯 자신들의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종살이하던 노예보다도 더 비참한 “메뚜기”로 여겼노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민13:33)

 

불행히도 이같이 과거의 실패에 묶여 스스로의 거진된 자화상을 갖고 살아가는 연약한 모습을 우리안에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옛사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향해서,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했으니, 자유안에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종에 멍에를 메지말라고 신신 당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5:1) 마치 과거의 상처에 매여있는 코끼리같이, 우리가 옛사람의 거짓된 자화상안에 갇혀 종과 같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한 자유인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미국땅의 여러 도시에서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Juneteenth”를 기념하며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865년 6월 19일에 택사스의 갈버스톤에서 고든 그랭거 장군이 선포한 “노예해방 선언”을 기념하는 시간였습니다.  이미 2년 반전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의 대국민 선포” (emancipation proclamation)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부의 여러 주들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이 노예상태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날을 기념하여 미국의 독립기념일처럼, 흑인들에게는 “노예해방의 독립기념”으로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인권운동의 물결은 여전히 이땅의 흑인들이 겪고있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해 주는 증거입니다. 이미 157년전에 링컨 대통령을 통해 선포된 노예 해방과 자유의 선언이 아직도 이땅의 많은 이들에겐 여전히 계속하여 이뤄가야할 현재 진행형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한 크리스챤의 자유도 이와같습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이천년전에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향해 죄에서 자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저주에서 축복을 주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주님이 선포하신 생명과 축복과 부활과 자유의 삶을 누리기위해선 순간 순간 믿음으로 굳게 서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과 자유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과 도전이 심해질수록, 성도들을 향한 마귀의 심술이 깊어질 수록, 거짓 자화상에 갇힌 어린 코끼기와 같이 뒤로 물러서는 믿음의 침륜(沈淪)에 빠져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의 백성이요, 영원한 자유의 백성으로 부르신 주님앞에 오늘도 부단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