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날로그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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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어느 덧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10여년 전 쯤 만났던 한 할아버지이 모습을 생각합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흩 뿌리듯 날리는 어느 가을 날,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서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습니다. 가을 사진을 찍으시려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진은 찍지 않으시고 한참을 서 계십니다. 카메라의 뷰 파인더에 눈을 대시며 사진을 찍으시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은행나무를 바라보시고 무언가 한참을 응시하시다가 다시 뷰 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십니다. 이번에는 찍으시려나 하고 기다려 보면 카메라 셔터에 올리셨던 손을 다시 내리고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십니다. 이번에는 크게 호흡도 한번 하십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몇 번을 망설인 끝에 한참만에야 겨우 한 장을 찍으십니다. 사진 찍는데 뭘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 봤더니. 그분이 가지신 카메라는 디지털이 아니고 필름을 넣어서 찍는 구식 필름 카메라였습니다. 언젠가 사진을 전문으로 찍으시는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맛이 없다고 필름 한 장 한 장이 귀하던 시절, 조심스럽게 정말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르던 그 긴장감과 섬세함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대신에 마우스를 클릭 합니다. 교회에 갈 때도 무거운 성경책을 들고 가지 않고 스마트폰 하나면 성경, 찬송 뭐든지 들어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디지털의 첨단이라고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스마튼폰으로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 전자회사의 모토처럼 ‘digital all’ 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discrete)입니다. 디지털 시계는 숫자로 시간을 나타냅니다. ’12:00’에서 ‘12:01’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숫자로 구분하여 표시합니다. 디지털의 반대는 아날로그입니다. 아날로그는 연속적 (continuous)이라는 의미입니다. 초침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시계를 보면 연속적이라 현재 시간이 몇 초인지 정확히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디지털은 간단하고 정확하고 빠르게 표시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모호하고 애매하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담겨진 깊은 의미가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정확하고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날로그를 감성적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편 40:5)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특별히 역경 가운데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현한 시입니다. 다윗은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행하신 기적이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의 생각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도저히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겠다고 고백합니다.

지금은 다 커서 대학에 진학한 아들이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세진아, 아빠 얼마큼 사랑해?” 그럼 이 아이가 아빠의 마음을 잘 아는지라 양팔을 벌려 크게 원을 그리면서 “많이 사랑해”라고 합니다. 그럼 저는 더 재밌어라. “에게~ 겨우 그것만큼 사랑해?” 라고 짖꿋게 다시 물어 봅니다. 그럼 이 녀석이 팔을 최대한 벌리고 다리까지 구부렸다 펴면서 “이만큼 사랑해” 그럽니다. 그런 아들 녀석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그런데 이 아이가 조금 더 자라게 되니 그 사랑의 표현량이 아주 구체화 되었습니다. 숫자를 배운 것입니다. 1부터 20까지 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진이 생각에는 십자리의 숫자는 굉장히 큰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진아 아빠 얼마큼 사랑하니 물으면 “응 아빠 17만큼 사랑해” 그럽니다. 대답이 디지털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17만큼 사랑해’라는 말은 아기 시절 양팔을 벌려서 ‘이만큼 사랑해’라고 표현할 때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양팔을 벌리고 목소리가 까지 톤을 높여가며 ‘이만큼 사랑해’라고 말할 때가 더욱 사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다윗이 지금 이 시를 지으면서 아마 같은 표현을 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셀 수도 없을 만큼 이 만큼 사랑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도저히 숫자로는 디지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표현되어지는 아날로그의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