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야베스를 키우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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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많은 크리스천들의 가정에 가보면 다음의 성경구절이 액자로 벽에 걸려 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장 10절)

야베스의 기도이다. 자세한 배경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야베스는 귀중한 자였고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경험을 주었던 자였다. 그런 그가 자라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바로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성경을 증거한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야베스와 같은 사람, 곧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기도를 하고, 또한 그 기도가 허락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신앙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야베스가 왜 그런 기도를 했는지, 그 기도의 응답에는 어떠한 야베스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베스가 아무런 연고와 관계 없이 갑자기 성경 속에 나타나 그런 기도를 하고 그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베스가 나온 두 구절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앞뒤로 적혀져 있는 야베스의 족보를 보아야 한다. 아베스는 유다 족속의 자손이었다. 그는 야곱의 12자녀 중에 영적인 장자권을 가진 유다 족속의 계보를 가진 자였다는 것이다. 야베스는 다윗과 예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영적 뿌리 속에 있는 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을 닮아가려는 신앙과 더불어 야베스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을 살펴 봄으로써 또 다른 야베스의 신앙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야베스를 키우는 신앙의 삶이다.

우리는 그동안 내가 야베스가 되고, 내가 야베스의 기도자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야베스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야베스와 같은 자녀들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베스의 기록이 다른 책이 아니라, 족보만 기록되어 있는 역대기상 앞 부분에 기록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곧 야베스가 단순히 훌륭한 사람이었다라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훌륭한 기도자는 믿음의 뿌리, 신앙의 족보 속에 나온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야베스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의 후손이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유다 족속이었음을 분명히 설명한다. 그것으로 야베스는 진공 속에 사람이 아니라, 기도의 뿌리를 이어받고 신앙의 유전을 받은 자였다는 것이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이 많다.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가 자녀를 향해 내려가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의 야베스의 기도보다는 자녀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가 이뤄져야 한다. 과거에는 야베스의 기도를 내게도 응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면, 이제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우리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그런 후손을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

내가 야베스가 되기보다 내 자녀를 야베스로 키우고자 하는 신앙이 더욱 풍성한 신앙의 삶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자녀에게 세속의 것을 물려 주고자 하는 불신앙의 모습이 목회자로부터 평신도에게까지 너무나 만연하다. 이제 영적인 귀한 것을 유전하자. 야베스의 기도를 내가 받아 자녀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하는 영적인 삶을 물려 주는 부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