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쩌면 우리는 틀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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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담임

 

1999년 매트릭스(The Matrix)라는 영화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곳곳이 떠들썩했다. 그 동안 눈요기로만 생각해 왔던 공상과학 영화가 철학과 사회학의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구원자를 찾아 다니는 모피어스가 주인공인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꿈 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겠나?” 마치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나비 꿈을 꾸며 이야기했던 말처럼, 꿈을 현실처럼 꿈꾼다면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말하며 생각하는 것이 모두 참일까? 멀리서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혹시 꿈이라는 신앙의 거짓 매트릭스에 있지 않는지요?”

필자는 가끔 지금의 교회 현실이 꿈이요 가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길 바랄 때가 많다. 꿈에서 일어날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청소년 전문 사역자가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수 년 동안 성추행하고 그 사실을 자신의 아내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구걸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믿지 못할 사건은 올해 벌어진 실제 범죄사건이다. 또한 왠만한 기업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 한 대형교회는 이미 편법 세습을 해 놓고도 이제는 진짜 세습을 하려고 한다. 그 교회가 속한 교단은 이미 목회자 가족의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위에 그 교회가 있고, 그 교회 위에 하나님 아니라 그 담임목사의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는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들이 실제로 지난 주중에 펼쳐졌다. 그것도 종교개혁 500주년 맞이하는 뜻 깊은(?) 주간에 말이다.

교회 안에서, 또한 성직자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벌어지는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은 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으면 그렇게 놔두겠습니까? 하나님이 없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죠’라는 비난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있다”는 매트릭스를 붙잡고자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는 틀렸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증거한다. 곧 인간은 실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간의 언어와 철학, 사상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나 열심히 하자고 말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게 무식했던 우리의 신앙이 어쩌면 틀렸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아니 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추행목사를 만들어 냈던 것이고, 목사 하나가 교회의 주인 노릇하게 만들어 놨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바로 그 안에 진리의 매트릭스가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강함과 지혜를 한 사람에게 주지 않으신다. 공동체에 주시고 세상에 전하시며 우주 만물에 충만하게 해 주신다. 권위로 명령하고 절대 복종을 요구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능력과 힘을 내려 놓고, 그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약함의 지혜와 어리석음의 능력으로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쩌면 제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교만과 무지로 하나님 머리 위에 앉는 사단이 되지 않기 위해서, 먼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음으로는 믿음의 공동체에 물으며,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 또한 살피는 자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틀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리와 정의에 서서 함께 하지 않으면, 거짓 메트릭스에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