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제까지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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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미네아폴리스에서 흑인 죠지 플로이드라가 백인경찰에게 비인도적인 살해를 당함으로 미국 전체가 항의 약탈 파괴 방화로 아픔을 겪고 있다. 시카고 남부의 여러 한인업체도 송두리째 없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미네소타는 내가 은퇴후 전환기 교회에서 사역하며 5년 정도 살았다. 호수가 많아 아름다우나 겨울이 길고 추운데도 교인 중에는 60년 이상 그곳에 사는 자가 여럿이다. 무엇이 좋아서인가 물었더니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이 첫째다. 수긍이 갔다. 전쟁의 폐허가 된 한국 재건을 위한 유엔의 각종 방안 가운데 교육부문을 미네소타 대학이 자원하여 맡아 일찍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한국의 전쟁 고아 입양자가 제일 많은 곳이다. 패전 월남의 피난민, 소말리아의 난민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여기서 어떻게 그런 끔직한 일이 일어날수 있단 말인가?

미네아폴리스에는 1910년 소수의 흑인이 살았지만 “인종 계약” 법을 만들어 백인 지역에 비백인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경계 지역과 흑인이 사는 곳에는 경찰 순찰이 강화되어 심한 차별이 있었다. 1968년 이 법이 폐지되기까지 흑인은 많은 고통과 불이익을 당하였고 그 후에도 삶의 현실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경찰은 정의와 공평 시행의 훈련을 받지만 현장에서는 속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백인우월주의가 가져오는 증오범죄다. 노예해방의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악령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나 저소득층은 느끼지 못한다. 바이러스 대유행에 가장 취약한 층이 흑인이다. 어디에 살든 경제형편이 어떠하든 이들이 많이 감염되고 생명을 잃는다. 위험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터로 나간다. 미국 대도시 어디서나 보는 일이다. 좌절과 분노가 쌓이면서 터질 날을 기다린 것이다. 같은 차별을 받아온 아시안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되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속에 있는 아픔이 풀려질 수 있을까? 경찰, 방위군, 군대로 항의 시위를 진압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 문제는 더 심화된다. 악덕 경찰을 해임하고 유죄판결하여도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떤 경찰서장은 시위대와 어울리며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런 태도가 전체에 확산될 수 있을까! 또는 죤 파이퍼 목사와 같이 이런 사회문제에 대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주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삶을 살며 약자를 섬길 수 있을까!

화단은 여러가지 꽃이 어울려 있을 때 아름답다. 주께서 각색 인종을 보시며 아름다워 하심을 우리도 같이 느낄 수 있을까! 알렉스 할레의 “뿌리”는 쿤타킨테 이야기다. 16세에 납치되어 1767년 매리랜드 농장에 팔려와 고생하며 피를 흘리는 때 주인은 노예의 피가 자기의 피와 색갈이 같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외모는 달라도 속에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속이 나와 같다면 그를 나처럼 받아드릴 수 있을까?

에콰돌의 와우다니족은 창을 쓰는 가장 잔인한 부족이다. 1955년 내트 세인트와 다른 4명의 선교사가 밀림속의 이들을 찾아 비행기에서 물품을 내려주고 친근하게 하여 착륙하였다가 모두가 창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 소식에 내트의 누이 레이철과 선교사 부인들이 자녀와 함께 그 부족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여인에게는 창을 쓰지 않았다. 여인들이 그들을 섬기며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을 하자 민카예를 위시한 용사들이 사랑에 감동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창을 버리게 된 것이 “창끝” 영화로 나왔다. 외모와 환경은 달라도 사람의 근본은 같다는 인식으로 나누는 사랑만이 분노로 병든 가슴을 녹여줄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