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필로그(Epilogue)’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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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시카고)

미국의 50개 주와 D. C.에서 시행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발효 중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이라는 성경을 인용한 법이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불이행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고, 응급 의료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구조 자에게 면책을 주는 법’이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던 이 법은 ‘사고 현장에 있던 의료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자기 판단으로 섣불리 응급조치를 했다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불러 상황을 악화 시킬 수 있다.’고도 하고, ‘시간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책임이 두려워 구조대가 도착 할 때까지 방치하여 생명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양론이 팽팽 했습니다.  결국 ‘전문 의료인이 아니라도 급한 상황이 되면 .자신의 판단으로 구조대가 도착 할 때 까지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게하고 결과가 나빠도 구조를 베푼 사람에게 면책조항을 둬 적극적으로 구명을 하도록’ 양립시켰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묻는데서 시작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1라운드는 율법학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논쟁으로 시작합니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 10장에 기록했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역질문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는 전문가의 정답,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정곡을 찌르는 그리스도,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로 피해 가려는 율법사의 꽁수로 마감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2라운드는 한 사람이 축복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저주의 땅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 들를 만나 옷을 빼앗기고 얻어맞아 “반죽은(Half Dead)” 상태로 버려진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강도만난 이 사람은 죄인을 상징합니다. 육신은 살았으나 영적으로 죽은, 거의 반죽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이 죽은 반생반사 (半生半死)입니다. 그 곁을 제사장과 레위 인이 차례로 지나갑니다.  제사장은 종교를 상징합니다. 종교는 죄인을 구원 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레위 인이 지나 갑니다. 레위인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도 이미 반이 죽은 사람에게 효과가 없습니다.  피하여 그냥 지나 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와 율법은 죄인을 구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한 사마리아인이 지나갑니다. 생김새나 옷차림 만 봐도 조금 전에 지나간 두 사람과는 확실하게 달랐지만 마음은 더 했습니다. 제3라운드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입니다. 혼혈족이라며 “개”라고 놀림 받고 멸시받는 사람입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응급치료를 하는 행동이 민첩합니다. 응급 처리를 한 후 자기 짐승에 태우고 주막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은 동전 둘을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약속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상처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겐 멸시를 받았지만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선한 사마이아법이 생겨난 비유입니다. 종교와 율법은 죄인을 구원 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며 찌릿한 전율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는 말씀이 ‘에필로그’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가 다시 오시기를 오늘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