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성은 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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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세상에서 활을 제일 잘 쏘는 명인이 제자들을 훈련시킨다. 여러 가지 훈련을 한 후, 활의 명인은 한 명의 수제자를 뽑으려고 한다. 제자들은 서로 활을 잘 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수없이 활 쏘는 연습을 한다. 날아가는 새도 활로 잡기도 하고, 한 번에 두 개의 활을 쏘기도 하는 훈련을 한다. 말을 타고 가면서 활을 쏘는 연습을 하고, 가장 멀리 날아가는 활을 쏘는 기술도 익힌다. 그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던 어느 날, 활의 명인이 마지막 수제자를 뽑는 시험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제자들이 ‘날아가는 새를 쏘라고 하실까? 머리에 사과를 올려 놓고 맞히라고 하실까? 가장 멀리 활을 쏘는 사람을 수제자로 삼으실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활의 명인이 지시하는 마지막 시험을 기다린다. 그때 명인은 열심히 훈련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저기 강 건너편에 무엇이 보이는가?” 이에 제자들은 “큰 나무와 하늘, 해가 보입니다” “나무와 나무 가지가 보입니다” “날아가는 새와 앉아 있는 새가 보입니다” 등등의 답을 한다. 그러나 명인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모든 제자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제자만이 남았다. 그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했다. 그 제자가 대답한다.

“저는 저 나무 기둥에 박혀 있는 활의 표적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답을 들을 활의 명인이 박수를 치며, “바로 네가 나의 유일한 활의 명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를 명인의 수제자로 삼았다.

활을 쏘는 명인은 다른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활의 표적만을 집중해야 한다. 활을 잘 쏘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쏘는 활이 날아가야 할 과녁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의사는 병을 잘 고쳐야 하고, 판사는 판결을 잘 해야 한다. 의사가 달리기를 잘 한다고 인정해 주지 않고, 판사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존경 받는 재판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녁, 각자의 표적에 집중하여 그곳에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맞출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실력자이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자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떨까? 신자는 신자가 향해 가야 할 영성의 푯대와 표적이 있다. 교회는 교회의 푯대를 향해 가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신자의 표적에 집중해 그곳만을 바라봐야 한다. 어두운 밤 바다 한 가운데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면, 배가 중심을 잡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빛, 곧 등대뿐일 것이다. 등대 말고, 오징어배의 밝은 전등빛을 좇아가면 길을 잃을 것이고, 자기들이 믿는 신념만을 가지고 키를 돌린다면, 배는 가고자 하는 곳에서 더 멀리 떠나가게 될 것이다. 영성은 바로 빛만을 바라보고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빛은 곧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고 간다면, 지금 내가 세탁소 공장에서 9시간 기계만 돌리며 매일 스시를 잘라내고 헤어샵에서 매일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을 할지라도, 우리의 영성은 예수의 수제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영성은 표적이다. 영성은 신앙의 표적 외에는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표적은 ‘예수 십자가와 보혈 외에 다른 무엇이 있으랴!‘ 혹자는 말한다. “왜 예수만 중요하고, 십자가만을 바라보라고 하냐?” 그러나 우리는 다시 반문을 듣는다. “언제 진정으로 예수만 바라보고, 언제 한 번 참으로 십자가만을 집중해 보았냐?”

교회 안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달라고, 참 신자와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너무도 많은 기독 종교인들이 기도 비슷한 것을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오직 예수만을 향한 표적을 세운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수제자가 되지 못하고 그저 기독 종교인이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오늘도 저 멀리 강 건너편을 바라보라! 그러나 다른 것을 보지 말라. 오직 영성의 표적, 믿음의 과녁만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