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적 에바다(열려라)의 삶을 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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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장애인을 치유하시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현장에서 장애인을 많이 상대하셨고 고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막7:32-35).

주님은 일단 귀 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을 무리가운데서 불러내서 따로 만나주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맹인이 고침 받는 장면도 마찬가집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막8:23)- 여기서도 맹인을 무리 가운데서 불러내십니다. 1:1로 만나십니다. 우리는 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고독한 단독자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따로 따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하고, 가장 진지하고 엄숙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치유가 일어납니다.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막7:33)-

이 장면은 특이합니다. 주님은 이런 식의 접촉을 통해 귀 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신 것입니다. 말을 들을 수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기에, 이러한 스킨십을 통해 그와 소통하신 겁니다. 주님이 양 귀에 손가락을 넣는 순간, 그 장애인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제 주님이 내 귀를 뚫어주시나 보다. 주님이 그의 혀에 손을 댔을 때, 주님이 내 맺힌 혀를 풀어 주시려나 보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에 귀에 손가락을 넣은 것이고, 혀가 어눌했기에 혀에 손을 대신 겁니다. 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왜 이렇게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셨을까요? 믿음이 없는 곳에는 치유가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적을 베푸시기 전에 먼저 믿음을 고무시킨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적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이적의 법칙이요 기적의 공식입니다. 주님은 장애인을 앞에 두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 탄식이란 말은 원어로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소리를 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연민으로 신음과도 같은 기도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기도 없는 이적은 없습니다. 이적은 항상 기도 응답의 결과입니다. 기도는 축복과 치유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권능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파이프 라인입니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며 ‘에바다(열리라)’ 하시니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주님이 관심하시는 장애는 우리들의 육체적인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장애도 포함합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도다’(막8:18).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그런 사람들만 장애인이겠습니까? 그런 육체적 장애보다 정신적, 영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주님의 구원이 절실한 진정한 장애인들입니다. 영적 장애, 육체적 장애, 가정적 장애, 정신적 장애가 말끔하게 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통해 주님만이 나의 모든 장애를 다 고쳐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셔서 영 육간에 모든 장애를 이기고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