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님의 눈물 Jesus Wept!

473

   이상기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육군 채플린 소령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것이며”(이사야42장 3절)

얼마전 예루살렘에 위치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던 “고난의 길” (Via Dolorosa)을 여러 순례자들과 함께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감동으로 기억되는 곳은 비아 돌로로사의 다섯번째 장소입니다. 그곳은 십자가를 지고 힘에겨워 쓰러지는 예수님을 대신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그 십자가를 대신지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게 했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바닥에 쓰러지며 손을 벽에 짚었다고 전해지는 그곳엔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순례객들이 벽면에 새겨진 예수님의 손자국에 자신들의 손을 얹고 기도와 묵상을 해왔다고 합니다.  본인도 떨리는 맘으로 주님이 고통스럽게 손을 뻗쳐 힘겹게 짚었을 그  손자국에 손을 대며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손자국은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천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넘어, 주님이 짚은 손자국으로부터 전해지는 생생함은 한 순례자의 온 몸을 전율하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우셨다”라고 기록된 요한복음 11장35절은 성경에 모든 구절중에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요, 마리아와 마르다의 형제인 나사로의 죽음앞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Christianity Today에 컬럼을  써온 Mark Buchanan목사는 이구절에 대해 “단순히  하나의 주어와 하나의 동사로 표현된 성경에서 가장 짧은 문장이지만, 이는 어떠한 신학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예수님의 성육신 신학의  핵심을 가장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 자비, 열정, 그리고 인간의 깨어지기쉬운 연약함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이 두 단어의 짧은 표현 – ‘예수께서 우셨다’- 그 속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성육신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부모도 오라비도 잃어버린  지치고 가난해진 두 여인의 고통앞에서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평범한 손자국, 주님의 눈물 흘리심, 그분의 좌절과 분노,… 어찌보면 이같이 연약하게만 보이는 주님에 대한 소개는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과는 좀처럼 어울리는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같은 실망감은 이천년전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적잖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도 있었습니다: “우렁찬 말발굽소리는 어디로가고, 왜 하필 나귀새끼인가? 하나님의 아들의 입성이 이렇게 초라해도 되는 건가? 과연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해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의 행진앞에 깔아 놓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의 고난받으심은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요, 상한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연약한 인생들의 삶을 이해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간주간을 보내면서2천년전 예루살렘의 수많은 군중들처럼 자신의 허황된 욕망과 세속적인 욕심를 마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우리의 삶에서 순종도 겸손도 감사도 잃어 버린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제 군중들의 신앙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우리의 참된 신앙을 회복하여  순종의 자세로 다시금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거짓과 교만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의 행진앞에 깔아놓는   “거룩한 주간” (Holy Week)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