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를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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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요즘 사람들에게 삶을 단순하게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현대인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복잡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박증은 공연히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잃게 하고 핵심을 흐리게 합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이라는 신학자가 쓴“천년과 하루”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신학서적입니다. 구약성경의 중요한 흐름을 설명한 책으로 부 제목이 “구약성경의 주류”입니다. 그런데 왜 책제목을 천년과 하루라고 정했을까요? 구약성경의 역사는 수 천 년의 기간을 포함하고 있지만, 성문화되는 과정(글로 씌어 진 과정)은 약 천년이 걸렸습니다.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수 천 년의 역사를 정리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하루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하루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던 날입니다. 그래서 천년과 하루입니다. 구약역사의 흐름은 바로 이 한 날을 향하여 흘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구원의 날이었고 은혜가 완성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구주 예수님을 향하여 흐르고 있으므로 역사의 본질과 이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 해줍니다. 역사의 본질이 은혜이고 역사의 이치가 십자가 구원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이라면 거기에 방향을 맞추고 사는 것이 복 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고. 복잡할 것이 하나 없습니다. 은혜에 인생을 맡기고 구주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좀 필요 없다 싶은 것들은 덜어냅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가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예수님을 바라볼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은혜를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과 같습니다. 길을 잃은 불안감과 놀이공원의 즐거움을 함께 갖이고 있는 복잡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잃었지만 놀이공원의 즐거움과 환호성 때문에 정신이 산란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발전하는 기술 문명이 주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 때문에 인생의 참된 목표를 찾는 일에는 시들합니다. 영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관심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쁘고 분주하게 삶의 환경적인 강박의 안개 속을 헤매며 살고 있습니다. 그 안개에 가려 예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면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되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며 동시에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위대한 삶을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나아가는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재능과 에너지를 이 곳 저 곳에 허비하지 않고, 단순하게 각자 인생의 목표점을 향해 온전히 나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