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리를 가게 하거든 (리브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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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이전 호에 이어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의 결혼을 위하여 자기 종 엘리에셀을 바벨론으로 보낸다. 엘리에셀은 신실한 신부를 찾는 방법을 정한다. 그것은 우물가에 있다가 물을 길러 오는 처녀에서 물을 달라고 해서, 만약 그 처녀가 자기와 낙타에게도 물을 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부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때 리브가가 온다. 계획대로 엘리에셀은 리브가에게 물을 달라고 한다. 그러자 리브가는 노인에게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길어 주기 위해 우물가로 뛰어간다.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창 24:19-20).

그리고 이 광경을 엘리에셀은 조용히 지켜본다. 리브가의 행동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리브가처럼 노인과 동물에게 물을 줄 것 같은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느냐?” 하지만 당시에 누군가에게 물을 준다는 의미는 단지 수도꼭지를 트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당시는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또한, 목마른 낙타가 물을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아는가? 20-30 갤런의 물을 마신다. 게다가, 리브가가 우물에 온 시간은 저녁때다. 이 시간에 많은 사람이 물을 길러 온다. 즉, 물을 길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만 한다. 물을 퍼서 낙타에게 주고 재빨리 뛰어가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목마른 낙타 한 마리가, 20-30갤런의 물을 10분 만에 마신다고 가정하자. 낙타가 총 10마리니까, 200-300 갤런의 물을 퍼다 날라야 하고, 최소한 2시간 동안 뛰어다니며 물을 길어야 한다. 리브가는 2시간 동안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노인을 위해 시간과 힘을 희생했다. 자기가 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을 넘어선 희생을 보여 주었다.

당신은 어떤가?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는 노인에게 인사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물 한잔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친절하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레박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노인, 앞으로 볼일도 없는 노인의 낙타를 위해서 직접 2시간 동안 물을 긷는 중노동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창 24:20은 리브가는 달려갔다고 증거한다. 왜 뛰어갔겠는가? 목마른 노인과 낙타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즉,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의무라는 차원을 넘지 못하면, 의무를 넘어서 은혜까지 가지 못하면, 덤으로 더 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마 5:20). 그다음,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무엇인지 설명하신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1). 한글 성경에 “오리”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1마일을 뜻한다. 십 리는 2마일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당시의 사람은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로마 군인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자기가 짊어진 배낭을 던져주며 1마일을 가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군인의 배낭은 무척 무겁다. 하지만 군말 말고 가야 한다. 이것이 로마법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수 없었을 때, 로마군인은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지 않았는가? 5리까지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사람이 가야 할 의무이다. 거절할 수 없는 거리다. 로마 군인의 짐을 지고 갈 때, 로마 군인은 뒤에서 빨리 가라고 협박도 하고, 늘여 터졌다고 놀리기도 하고, 욕도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이제 5리를 갔다. 그러면 군인은 더 그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의무는 끝난다. 그때 로마 군인은 농담이 섞인 조로 이렇게 말한다. “이봐, 수고했는데, 10리까지 가는 것은 어때?” 하지만 강제로 가게 할 수는 없다. 법이 정한 의무가 끝났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그냥 배낭을 내려놓고, “내 임무는 끝났소. 나는 가겠소”라고 말하면 된다. 이것이 첫 번째 마일, 즉 오리다. 첫 번째 마일은 의무다. 그러나 두 번째 마일은 덤이다. 예수님이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의무라는 것에 멈춰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넘어서라고 말씀하신다. 리브가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