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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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스데반은 자기처럼 로마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공회에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됩니다. 죄목은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고친다는 예수의 신성모독적 가르침을 그도 똑같이 믿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이때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공회에서 권능 가득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중 한 가지 포인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스데반은 어떤 것도 우상화하지 말라고 설파합니다. 성전 파괴 주장에 대한 변론입니다. 그는 모세 때 지은 성막과 솔로몬 때 세운 성전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모세 때의 성막은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짓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반면 성전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법궤를 보관할 성전을 짓고 싶어하는 다윗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을 완성한 솔로몬은 기도를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 없을텐데 이 성전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전은 결코 광대하신 하나님의 거처가 될 수 없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비슷한 말씀을 계시해주셨습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인데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이 다만 예배와 기도를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장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스데반 당시 성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강도의 굴혈로 전락해있었습니다. 만민이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장터가 세워져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는 장소로 타락하고 만 겁니다. 성전이 지녀야 할 참의미가 사라지고 만 겁니다. 참예배와 참기도가 사라져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성전은 보통 건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헤롯 대왕이 엄청난 돈을 퍼부어 세운 그래서 당시 “must-see” 즉 꼭 봐야 할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성전이 될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공회원들과 유대교인들은 그렇게 평범한 건물이 돼버린 성전을 보호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겁니다. 결국 성전은 유대교인들에겐 우상이 되고 만겁니다.

사무엘상 4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우상처럼 섬기는 희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장로들은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오자고 합니다. 당시 하나님께선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성막을 버리셨고, 따라서 법궤도나무 상자에 불과했습니다. 죄의 결과에 무지한 장로들은 나무 상자에 불과한 법궤를 의지한 겁니다. 법궤를 우상으로 섬긴 겁니다. 그 결과는 철저한 패배였습니다.

우리 신앙에 이런 면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인은 샤머니즘과 애니미즘 문화에 오랫동안 젖어살아왔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과 관련 주변에서 이런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보셨을 겁니다. “시험 전날 성경을 베고 자면 시험을 잘본다. 안전한 운전을 위해 성경책을 차에 두고 다녀라. 옛날 세로로 인쇄된 성경이 진짜 성경이니 보물처럼 간직해라…”또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성경 보고 찬송하는 걸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성경책과 성경앱은 하나님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도구를 우상화하는 행동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겁니다. 성경책 뿐이 아닙니다.

신앙의 알맹이과신앙을 돕는 껍데기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