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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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의 펜데믹 사태에도 지금껏 그것은 뉴스에나 나오는 남의 일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 같은 교회의 권사님이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일을 겪고 나서야 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몇 번이래도 입원한 병실에서 손이라도 붙잡고 함께 기도를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외부인이의 출입이 통제되어 그냥 건물 밖에서 병동만 쳐다볼 뿐입니다. 혼자서 외롭고 힘겹게 병마(病魔)와 싸워야할 권사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절로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위로가 얼마나 힘없고 한계가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평소에 젊은이들보다 건강하리만큼 활동적이셨던 분이라, 믿기지 않는 갑작스런 소식에 교우들은 안타까워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안타까워하는 어떤 염려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위로하시고자 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성경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보니, 하나님은 포로생활속에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선지자 이사야로 하여금 이같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사40:1. 하나님의 맘은 얼마나 안타까웠는 지, 수십년 간 포로생활에 신음하는 그의 백성들을 향해 “위로”의 약속을 거듭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인생의 모든 궁극적인 위로는 오직 하나님안에서 겸험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영과 혼의 깊은 내면의 신음과 아픔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실 위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진정한 위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 같은 그의 사랑의 열정을 알리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외치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40: 6-8. 하나님의 위로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순간적인 것과 같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에게 영원한 위로요 생명이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위로하라!” & “외치라!”라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부탁하신 하나님은 이젠, “보라!” (사40:10) 곧,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고 그의 백성들에게 전하라 명령하십니다. 바로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40:11) 즉 하나님은 양들의 선한 목자와 같이 그들을 먹이시고, 안으시고, 인도하신 다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명(命)하신 “위로하라!” “외치라!” “주를 보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 주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그 약속은 산과 골짝, 사막을 지나 모든 이가 듣도록 전해져아할 “기쁨의 소식” (the good tidings)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에게는 그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의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의 영원한 위로와 평화가 넘치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치않으시실, 그 하나님을 주목하며 우리 모든 성도는 이같이 주앞에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계 4:8하) 오늘도 병상에 계신 모든 이들과 그 가족들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로와 은혜가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