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다와 시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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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12:6) 이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면,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파 두단에 천원, 다섯 단에 이천원” 외치며 파 한단을 “덤”으로 끼워팔던 시장상인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그와같이 예수님은 당시 시장에서 한낱 “덤”으로 팔리우던 “참새 한마리” 조차도 하나님께선 사랑과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물며 피조물의 으뜸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찌 이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유독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놀랍도록 두려운 기록을 이렇게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했으면 좋을뻔 하였도다!” (막14:21)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여 말씀하신 끔찍한 선언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전”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가르켜 하신 말씀입니다. 심지어 동물들조차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계를 아름답게 노래하도록 지음받았다고 한다면,  존귀한 사람으로 태어난 그의 인생이 왜 이름없는 짐승만도 못한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수치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으로부터 차가운 배신을 경험하는 경우를 종종 인생을 살다보면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임과 동시에 가공할 만한 악의 도구가 되어 이웃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얼마전 한국에서는 2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입에도 담지못할 흉찍한 성범죄로인해 검거된 신문기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미성년자들을 성노예로 삼아 인터넷에 못된 영상을 올리고, 그것을 사려고 달려드는 짐승같은 고객들에게 억대의 돈을 챙겼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젊은이가 경찰에 검거되었을 때, “이제 악마의 삶을 멈추게 되어 차라리 감사한다” 라는 고백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악마의 도구가 되어 겁도없이 살아왔던 한 인생의 슬픈 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가룟 유다는 자신의 영혼속에 악마의 유혹이 자리잡자 그는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했던 예수님을 향해 ‘배반의 입맞춤’을 맞추고 그를 십자가의 형틀에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는 3년이 지나도록 예수님곁에 있었지만 그에게 예수는 주님도, 하나님의 아들도, 메시야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의 왕좌엔 언제나 자신 앉아 있었고, 세속에 대한 탐욕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성경의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만이 그의 진정한 주인이요, 하나님이었을 뿐입니다. 여기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과 친밀한 사람들중, 주님을 부인한 또 다른 사람을 성경은 소개합니다. 바로 “반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좌우명을 “절대 내 사전엔 배신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우직한 어부의 의리를 간직한 사람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는 가야바의 뜰에서 어린 소녀의 물음에도 속절없이 ‘예수를 모른다’ 세번이나 부인하다가 닭의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통곡하며 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주님의 음성이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마치 너를 밀을 까부르듯 하리라… 너는 뉘우치고 돌아온 후에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여라.”(눅22:31-32) 그후 베드로는 평생 닭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통곡하며 주님께 기도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와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얻는 인생의 교훈을 얻게됩니다. 첫째는 인생이란 참으로 연약하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스스로 넘어질까 조심하는 겸손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닭의 울음소리에도 주님의 음성을 기억했던 베드로와 같이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치 시인 윤동주의 서시에서 처럼말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잎새를 통해 들려지는 작고 미세한 소리에서도, 주님의 뜻을 물으며 귀기울이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종려나무없는  종려주일” “교회없는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부터 종려가지를 흔들며, 겉옷을 주의 발앞에 펼쳐놓고, 우리의 마을에 입성(入城)하시는 주님을 향해 목놓아 “호산나”를 부르며 주를 영접합니다.([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