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종(有 終)의 미(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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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이웃 교회 담임(시카고)/미육군 채플린

 

이제 11월입니다.  한해가 쏜살같이 지나고있다는 생각을 하며, 유종의 미를 거둬야 겠다고 이야기 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끝을 잘 마무리하는 지혜, 곧 이것을 가리켜 유종의 미를 거둔다라고 흔히들 이야기 합니다.  저는 이말을 좀 다르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이 있음”(有 終)을 아는 것이 복되다. 곧,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사는 지혜야말로 인생의 복이 된다는 말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Tufts대학에서 평생 섹스피어와 영문학을 가르쳤던 Sylvan Barnet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한 인간도 영원할 순 없다. 단지 인간이란 운명적으로 유한한 존재요, 시간과 공간에 매여있는 존재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가 아닌것처럼 부정하며 행동하는 것이 곧 죄다.”

 

인생의 마지막(有 終)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유종의 사실앞에서 많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죽음의 자리에서 쓴 글이라고 읽혀지는 내용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가 무엇인지 아시오? 그것은 병원에 있는 침대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돈만 있으면, 당신을 대신해 운전할 기사도 고용할 수 있지만, 죽어가는 당신을 대신해 병원침대에 누워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사의 기록엔 인간의 이같은 유한성을 부정하고 마치 자신의 영화가 영원할 것이라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밋과 미이라를 만든 사람들이 그러했고,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에 수천의 토병들로 만들어 사후세계에도 자신을 호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의 붉은 광장엔 레닌의 시체가, 북한의 주석궁엔 김일성이 사후에도 여전히 살아 유훈통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인생의 유종(有 終)을 부인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처럼 여겨집니다.

 

이들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죽음을 담담히 맞이한 한 사람을 성경은 소개합니다. 성경의 신명기엔 (신34)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의 주인공이었던 모세의 죽음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카리스마와 신적권위를 가지고 40년간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그렇지만 험난한 광야길을 통과한후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두고, 그는 마치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역사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의 묻힌 곳이 어딘지도, 그를 기념한 흔한 돌비석 하나없이 요단동편 어느 산기슭에서 그의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저는 이 엄청난 지도자의 담담한 죽음을 기록한 성경의 말씀을 읽으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그 마지막엔 그의 업적도, 명성도, 재산도, 권세도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有 終)앞에서 담담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 신앙인들의 독특한 모습엔 “하나님 품안에 자신의 영혼을 맡기는 믿음” 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영혼이 거할 곳을 분명히 알았기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평화를 얻게된 것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거할 곳은 피라밋같이 쌓아 올린 산성도, 거대한 지하도시도 아닌, 바로 “창조주 하나님” 품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은(시90:1)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여, 당신은 모든 세대에 걸쳐 우리가 거할 곳이 되었나이다”(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 담대히 외치신 말씀이,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였습니다. 신앙인의 마지막(有 終)이 아름다울 수있는 이유는 우리의 영혼을 맡길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유종의 미를 가진 성도의 삶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