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웃을 위한 공간

43

 

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K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사 하는데 짐 처분이 꽤 어려웠습니다. 싸이즈를 줄여서 옮기다 보니 당연했습니다. 쓸만한 물건들을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창고를 얻어 보관하기에도 마땅치 않아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하던 중 한 사람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패스트 푸드 점에서 일하는 여자 점원이예요. 새벽 출근 길에 커피류를 사러 자주 들르는 가게의 드라이브 쓰루 창구에서 일하는 멕시칸 점원입니다. 이른 새벽 시간인데도 갈 때마다 주문한 음식에 환한 웃음을 함께 더해주는 아주 기분 좋은 친굽니다. 한결같은 태도가 기특해서 하루는 미리 준비해 둔 사과를 건네주었습니다. 어찌나 고마워 하던지. 그날 이후로 더 친해졌습니다.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난 겁니다. 그래서 창구에 들러 주문한 커피를 받으면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건네주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저녁 전화가 왔어요. 자기 집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지 남편과 함께 방문해서 둘러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맘에 들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와서 잔뜩 실어갔어요. 쓸만한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장면이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질 않아요. 그 친구들이 이사짐 옮기는 걸 도와준 겁니다. 감사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거죠.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점원에게 사과를 건네준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비스 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친절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잖아요. 그런데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친절함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준 집사님의 마음이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맘의 여유가 낳은 그 행동은 돈을 매개로 한 상업적 대화와 교환만이 무심히 오가는 창구에 따뜻한 관계의 꽃을 피운 겁니다.

오래 전 한 쎄미나에서 들은 간증이 생각납니다.

“목회 초기 참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까지 사역하고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는 다시 교회로 달려가 밤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을 때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어요. 잠을 못자는 겁니다. 보름 정도를 꼬박 밤을 새고나니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의사를 찾아가 상황과 증상을 들려주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치료법은 딱 3가지 입니다. 목회를 당장 그만 두거나, 그렇게 살다가 죽거나, 저녁 식사 후에 교회에 가지 않거나, 이중에서 하나를 고르시면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건강은 금새 호전되었습니다. 문제는 남아도는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도대체 뭘 해야할지를 모르겠는 겁니다. 어느 날 창고를 뒤지다가 만돌린을 발견하고는 그날부터 앞뜰에 나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주 소리를 듣고 이웃 사람들이 자신의 악기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동네 악단이 구성되고 집 앞뜰은 공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 뜰 공연장은 연주자들과 관객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여든 이웃들 앞에서 가끔씩 복음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사역이 시작된 겁니다.”

이때의 체험을 담아 “이웃을 위한 공간을 만들라”는 책도 출판했다고 합니다. 여유가 만든 기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

예수님은 아주 바쁘셨습니다. 그래도 주님의 삶에는 이웃을 위한 공간이 항상 여유롭게 오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자, 나인 성의 과부, 바디매오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들어와 그들만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관심과 배려로 이웃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공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