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정중독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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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인정중독이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과도하고 민감하게 생각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 자아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인정중독에 빠진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인정해 줄 때에만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무의미하다고까지 생각하는 극단에 빠지는 부류이다.

보통 인정중독자들은 일부러 웃는 얼굴이나 좋은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지나치게 억제하고 때로는 심각할 정도로 포기하면서까지 살아간다. 이들은 타인지향적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을 충족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인정중독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타인의 대상이 종교적인 신이나 기독교의 하나님이 될 때, 그것은 우상이 된다.

구약성경에 보면, 요나 선지자가 있다. 하나님은 아람의 니느웨 도시로 가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요나선지자는 하나님 명령의 반대로 스페인의 다시스로 간다. 가는 도중, 하나님은 풍랑을 통해 요나를 심판하신다. 그래서 요나는 배에서 물로 빠져 큰 물고기에게 잡혀 먹히고 3일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낸다. 그 안에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요나는 밖으로 나와, 니느웨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때 니느웨 도시는 요나선지자의 회개 선포에 왕에서부터 어린 아이까지 모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요나는 그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요나 4:1-3)

요나는 분명히 아람 백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니느웨가 그렇게 회개하니, 하나님께 성을 내고 화를 낸다. 그리곤 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바로 이것이 인정중독의 우상에 빠진 모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매일같이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하시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매번 약속하고 결단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게 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다. 그러는 척만 하는 것이다. 요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최소한으로 하나님께만 인정받는 삶을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원수와 같은 이들을 긍휼하게 바라본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죄값만큼 벌 주시고 심판해 주셔야지요. 왜 그들은 가만히 놔 두십니까?”라고 요나처럼 말하는 가면 쓴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만 하면 매번 눈물을 흘리고 말을 못 이으면서, 정작 속으로 ‘내가 예수님은 사랑이라고 말할 테니, 당신은 그들을 심판하시고 벌을 주세요’라고 타인을 저주하고 정죄하는 것을 일삼는다.

하나님은 상관에게 인정받기만 원하는 군인보다 그 분의 모든 것을 닮아가고자 온전히 순종하는 제자를 원한다. 몇 가지 율법들과 예수 이후의 종교적 명령들을 그대로 따르면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것까지도 인내하며 철저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고 가는 제자는 참으로 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신앙 속에서 인정중독의 우상에서 벗어나자. 인정받는 것보다 겸손과 순종으로 신실한 신앙을 세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