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상진의(立像盡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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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漢詩)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는데 보통 그 제목은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화제(畵題) 주어졌습니다.“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의 고민 끝에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놓고 그 숲 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황제는 그림들을 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습니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깊은 산 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황제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화가에게 1등 상을 주겠다”

한번은 또 이런 제목이 주어졌습니다.“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었습니다.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꽃향기는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지 눈으로 볼 수가 없는데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역시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습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로 쩔쩔매고 있을때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위로 쏠렸습니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습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이 책에서 이야기를 통해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은 ‘입상진의’(立像盡意)라고 하는 한시(漢詩)의 표현 기법이었습니다. ‘입상진의’(立像盡意)라는 말은 “형상을 세워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의미로 이미지(image)를 통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표현해 내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죠. 꽃 향기가 나는 곳에 벌과 나비들이 모여들었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러하셨습니다.그분이 가시는 곳 마다, 그분이 행하시는 길목 마다 허다한 무리가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향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그것은 어떤 향기었습니까? 그분의 향기는 몰약으로 표현되어 집니다. 몰약은 사막 지대, 특히 동북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자라는 감람과의 관목입니다. 그 나무의 줄기에서 나오는 수지(樹枝)가 굳어지면 몰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굳어진 몰약의 형태가 물방울 모양이어서 사람들은 몰약 수지를 ‘눈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아울러 ‘몰약’의 어원은 아랍어의 ‘몹시 쓰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맛은 몹시 씁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루를 내서 향을 태우면 향기로운 향이 난다고 합니다. 몰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나무껍질을 배어 내어야 합니다. 이것은 쓰디 쓴 고통의 체험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벗겨지신채로 고통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올마다 몰약내 풍기는 주의 두루마리 그 향기 나에게 미치니 내 마음 즐겁다.” 예수님의 희생과 죽으심의 향기가 오늘 우리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 곧 다른 이를 위한 작은 배려와 나눔 그리고 희생의 삶이 우리에게서 흩어져야 할 그분의 향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