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 8일의 창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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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창세기는 가족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6번째날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7번째날 안식을 취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창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셔서(창 2:20) 돕는 베필로 하와를 창조해 주셨다. 여기서 하와의 창조는 단순히 또 다른 인간의 창조가 아니라, 아담에게 하와를 허락함을 통해 가족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8번째날의 창조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가족의 탄생을 통해 완성이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타락으로 인간은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죽음은 단순한 저주와 처벌으로써의 허무의 끝이 아니었다. 심판으로 인간은 죽지만, 대신 하나님은 가족 공동체를 살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을 향한 심판의 내용을 보라.(창 3:16-17) 그 심판에는 도리어 하나님이 이 땅의 역사를 이끄시고자 하는 신성한 뜻이 드러난다. 태초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 남자는 평생 땅을 파고 일구어 식물의 소산을 만들다가 죽게 될 것이고 여자는 평생 해산의 고통과 타인으로부터 지배받는 고난을 받으며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인간의 심판은 곧 ‘나는 죽지만 가족을 살리게 될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타락으로 죄의 값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뜻을 단순하게 접지 않으시고 인간의 죽음으로 가족 공동체를 살리고자 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은 심판으로 죽게 되었지만, 대신 가족은 살게 되었다. 우리의 부모는 평생 일하다 죽고 애를 낳고 차별 받다가 죽어가는 실존의 삶을 살지만, 그들의 자녀는 생명을 얻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이 받은 심판으로 가족을 살리셨고 그 가족은 역사를 만들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그 역사의 시작을 기록한 것이 창세기라는 것이다.

만약 인류가 타락하고 죽음과 허무에 대한 심판이 전부였다면, 창세기 4장의 내용부터는 저주와 죄악의 이야기가 나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4장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내용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와,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정을 꾸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은 심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심판 받은 인간을 통해 가정 공동체를 살리고 유지시키길 원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만에 의한 역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이어가는 역사를 만들어가기 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래서 창세기의 역사는 아담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역사가 아니라, 아담의 가족과 아브라함의 가족, 이삭, 야곱, 요셉의 가족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신성한 가족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다. 예수는 저주와 심판의 십자가 위에 달린다. 그 앞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던 제자가 서 있다. 예수가 어머니에게 말한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그리고 다시 사랑하던 제자에게는 “네 어머니다”(요 19:27) 가족의 역사는 태초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 신성한 역사를 혈통과 육신에만 가두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선포한다. “어머니, 보세요. 이 제자가 나를 대신해서 어머니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야, 이제 내 육신의 어머니를 네게 맡기니, 친어머니처럼 모시어라.”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며, 천국의 가정은 혈통과 육신과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되는 공동체가 될 것을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영적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교회 안에 어르신들을 나의 부모님처럼, 자녀의 세대를 나의 자녀처럼 생각하는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선포한 것은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곧 천국의 가정을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버이 주일이 지났다. 지금도 창세로부터 시작된 가정의 창조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그 8번째 창조의 완성이 곳곳의 교회에서 성취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