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의 모양과 불성(佛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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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사람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인연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인연은 사람 사이의 만남만을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연(因緣)은 ‘원인’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로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 위한 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나는 사람의 옷깃이라도 한번 스치려면 그 모든 조건(인연)이 갖춰줘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온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가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원리를 연기(緣起)라고 표현합니다. ‘연'(緣)은 ‘여러 가지 조건’을 뜻하고 ‘기'(起)는 ‘생겨나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생겨날 만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생겨 났다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기가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을 컵에 부으면 물은 컵 모양이 됩니다. 이제 컵 속의 물을 바가지로 옮겨 부으면 물은 금세 바가지 모양이 됩니다. 물은 처음부터 특정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컵 혹은 바가지라는 조건(인연)에 의존해야만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컵 모양이든 바가지 모양이든 그 조건에 의존해야만 있을 수 있고 조건이 소멸하면 그 모양도 함께 소멸하니 이것이 연기를 설명하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럼 물의 모습은 인연(조건)에 따라 달라지니 단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물 자체가 존재함을 인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물 자체도 조건에 의존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의 온도가 상승하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고 물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기를 깨달은 자가 그 다음으로 나가야 하는 단계를 불성(佛性)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초월성’ 이것이 불성의 원리입니다. 

인생의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불교에서는 불성을 인정하지 않고 한 모습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물이 늘 컵 모양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어느 한 모습에 집착하는 순간이 괴로움을 부르는 순간이 됩니다. 비행기 기내식 라면이 덜 익었다고 승무원을 폭행한 전 포스코에너지 OOO상무,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옮겨달라”는 말에 “네가 뭔데 차를 빼라 마라야”며 지갑으로 호텔 지배인 뺨을 때린 OOO 회장. 이 사람들은 왜 화를 냈을까요? 회장이면 회사 안에서나 회장이지 아무데서나 회장 대접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회장이라고 고집하는 순간, 회사 밖에서도 회장님 대우 받지 못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후에 대승불교는 바로 이 연기에 순응하는 삶에 대한 개념을 한층 더 깊게 정립하여 공(空)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들이 품어야 하는 마음, 우리들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권면하면서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그럼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6-7) 예수님의 마음은 비우는 마음이었습니다. 무엇을 비우셨는가? 하나님의 본체(영광), 하나님과 동등됨 이 모든 것을 비웠습니다.  비웠다는 것은 포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대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이 형체라는 말은 겉모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면과 내면을 모두 완전히 물이 컵에 있을 때와 바가지에 있을 때 달라진 것 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체는 포기하고 완전히 100%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으로서 대접받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종의 취급을 당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온갖 모욕과 멸시와 고난을 감당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리칩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자신의 모습을 내려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나를 온전히 내려 놓고 겸손히 낮아지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