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좋은 소문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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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 교회)

한국 강원도 태백은 한 때 잘 나가던 도시였다. 탄광산업이 전성기를 이루던 80년대 말에는 15만명이 사는 큰 도시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태백시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탄광이 폐쇄되고 그에 연결된 산업기반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태백시는 최근 행정도시의 최소 인구수인 5만명이 붕괴되어 도시로서의 위치를 상실할 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태백시를 찾지 않는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관광을 하기 위해서 어떤 이유에서도 태백시는 관심의 장소가 되지 않고 있다. 이미 수 십 년 전, 태백시는 ‘폐광의 도시, 검은 도시, 망한 도시’라는 소문 때문에 사람이 찾아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도리어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떠나려고 하는 도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태백에서 반시간 정도 가게 되면, 예수원(Jesus Abbey)이라는 곳이 나온다. 그곳은 초교파 개신교 수도원이다. 1965년에 미국의 성공회 사제인 대천덕신부가 중보기도의 집으로 세운 후, 예수원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여 수도 생활을 하게 하는 공동체이다. 매년 1만명 이상의 구도자들이 방문하여 기도와 영성훈련을 하고 떠나간다. 교통편은 쉽지 않다. 수도원까지 차로 갈 수 없어, 반드시 걸어야 한다. 셀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고, 엄격한 규율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방문객과 영성훈련을 원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그 이유는 시대에 상관없이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더불어 그곳을 방문하고 훈련을 받고자 떠난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이다.

필자도 청년시절, 교회 사역자의 추천으로 예수원을 찾았다. 기도와 노동의 반복된 일주일이 수 년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20대 초의 혼란함을 가라앉게 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구도의 바른 길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는 청춘들에게 반드시 ‘예수원’을 추천해 주곤 했다.

태백시와 예수원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 한 곳은 점점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다른 한 곳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소문이었다. 한 곳은 “망했다. 끝났다. 죽었다”라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다른 한 곳은 “다녀오면 살아난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 짐을 안고 찾아가지만, 돌아올 때 가벼운 마음으로 온다”라는 식의 긍정적이고 밝은 소문이 나 있었다. 이런 상반된 이야기를 듣고 어디를 찾아가겠는가?

그런데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소문이 잘 난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소문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우리는 누구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겠는가? 누구를 더 만나기 원하겠는가? 소문이 좋은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신뢰를 받을 것이고 인정받은 사람이 될 것이다.

빌레몬서라는 한 장짜리 성경이 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믿음으로 아들을 삼은 오네시모가 곧 석방되어 다시 종이 되어서 자기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바울이 오메시모를 잘 돌봐달라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이 빌레몬서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에서 바울이 빌레몬에 대해서,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몬 1:4-5)라고 말한다. 바울은 빌레몬을 신뢰하고 편지를 쓴다. 그에게 믿음을 갖고 있고, 그가 자신의 뜻을 잘 받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를 “… 네(빌레몬)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들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소문의 사람인가? 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 평가를 받고 있고, 소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소문의 사람이 되어야 할지 자명한 일이다. 좋은 소문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도 소문의 사람이었고 바울도 그랬다. 이제 그들이 내어 놓고 간 그 자리를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지켜야 한다. 좋은 소문의 사람이 되자. 그것이 선교와 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