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좌충우돌 채플린 이야기 1. 채플린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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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목사(하나님의 성회 시카고교회 부목사)

 

늦바람이 불어 26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오로지 상담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서…

한신대에서 기독교교육학을, 한신대학원에서 목회상담을 전공했다. 왠지 2% 부족함을 느꼈다. 상담에 대한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껴 유학을 꿈꾸었다. 신학교 입학 후 10년만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유학을 꿈꾼지 10년, 37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출국 전 인사차 찾아 뵌 학교 총장님께서 “나는 자네 나이에 유학 마치고 와서 교수가 되었는데, 그 늦은 나이에 꼭 유학을 가야하겠나? 적응 못하면 1년 안에 돌아오게”라고 격려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그 말씀 덕분에 더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상담 임상 경험을 위해 온 미국 땅!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목회상담학 박사를 마쳤지만 여전히 목말랐다. 실전 경험보다 현실 적응과 영어라는 언어 장벽과 싸워야 했고, 하루 이틀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인교회들에서 파트타임으로 10년 넘게 목회하며, 15인승 교회차를 몰며 열심히 달렸지만, 여전히 상담을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 그래, 상담가가 돼야지. 그게 나의 꿈이었지. 그러려면 뭘 할 수 있을까? 상담센터를 만들까?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무엇으로 만들지? 그래, 먼저 기반을 다지자. 기반을 다지기 위한 첫걸음으로 무엇이 좋을까? 그래. 병원 채플린이 되는 거야. 그러면 환자들을 만나서 상담도 해주고 복음도 전할 수 있겠지. 그럼, 채플린이 되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래, 채플린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물어봐야겠다.”

삶의 방향전환이 시작된 2016년 9월, 군인병원(Veterans Affairs) 채플린을 만나 나의 꿈을 나누고 조언을 구했다. 11월엔 뜻하지 않는 차 접촉사고를 내서 보험회사에 갔다가 그곳 사장님을 통해 호스피스 채플린을 소개 받아 만나 뵙게 되었고 여전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또 선한사마리아인 병원(Advocate Good Samaritan Hospital) 채플린을 하는 학교 동문의 도움으로 루터란 병원의 슈퍼바이저 채플린과 연결되어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채플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채플린이 되려 하는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동료들과 의견의 차이가 있으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받았다.

며칠 후 답장 이메일과 함께 미역국이 배달되어 왔다. 나의 영어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실망했지만, 나의 현주소인걸 어쩌랴! 미국생활 10년 넘게 학교 수업 빼고는 영어를 쓴 일이 없고, 한인 사회, 한인 교회, 소외된 한국인들만 만나며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말만 사용했으니 ‘인과응보’인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래, 채플린 친구와 상의해 보자.”

친구의 도움으로 선한사마리아인 병원(Good Sam) 슈퍼바이저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때가 2016년 12월이었다. 채플린 인턴 과정은 2017년 1월에 시작 되고 총 6명의 인턴을 뽑는데 이미 6명이 채워졌단다. 그러면서 다음 가을학기라도 하겠냐고 물었다.

“당근이죠”

일단 문을 두드려 본 것인데 4개월 사이에 ‘많은 새로운 분들과의 만남’과 ‘나의 현주소 절감’과 ‘다음 단계에 준비사항’을 발견한 커다란 성취였고,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두 번의 인터뷰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더라.”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을까?” 조심하지 못한 나를 자책 했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나의 길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사고를 통해 귀한 만남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깨닫고 감사했다. 또한 앞으로 9개월 정도의 준비 시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2017년 가을에 채플린 인턴이 되기 위한 나의 피나는 노력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