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죄책감을 해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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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담임

 

상담을 해 주는 한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저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한 청취자의 상담에,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죄책감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세요”라고 처방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신앙인의 입장에서 그 라디오 상담가의 답은 수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죄책감을 해결하지 않고 삶 가운데 품고 살아간다면, 죄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잘못인지 알지만 할 수 없다’, ‘나도 그 죄를 범해 보았는데, 괜찮더라’, ‘나도 그 죄책감에 빠져 살지만 지금까지 괜찮다. 너도 괜찮을 것이다’라는 식의 죄에 대한 합리화가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죄에 대한 자기 합리화는 개인의 영성을 넘어 가정과 교회의 집단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너희 아버지도 항상 그러셨어. 그러니 너도 그러는구나’, ‘이 교회는 늘 이런 문제가 발생하네. 그래도 성도가 모이니 상관없는 일 아니겠어?’

그러나 이런 죄책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우선 영적인 자신감을 잃게 된다. 추리 소설 ‘셜록 홈즈’의 저자인 아더 코난 도일이 영국의 유명인들에게 장난 편지를 보냈다. “당신은 모든 것이 발각되었으니 즉시 도망치시오.” 그랬더니, 실제로 5명의 유명인이 편지를 받은지 하루가 못 되어 모두 해외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인간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늘 어디에선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문제를 누군가가 정죄하거나 문제 삼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 관계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죄책감에 의해 자신감이 온전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가 상대방에게 드러나 관계가 깨지기 전에 물량과 물질, 선물, 칭찬 공세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도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를 품고 있으면, 성도들에게 선물공세, 행사공세, 물질공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한다. 이처럼 죄책감의 문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참된 인간과 예수의 몸으로서의 바른 교회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게 한다.

이런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내 안에 율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율법은 구원에 문제에 상관은 없지만, 때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 곧 우리가 마음으로 지키고 있는 도덕과 윤리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문제에 얽매여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이 영적으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죄책감에 대한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고백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말만 잘 한다는 것이다. 행동이 없다. 사랑과 용서를 그렇게 외쳐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일으키는 죄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회개자가 되거나 행동하는 영적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을 보아라. 그들 안에 강력하게 채워진 죄책감의 문제에 그들은 평생 영적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았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좇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고, 상처받은 자 앞에서 잘못을 시인해야 하며, 나 자신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증거한다. 진정으로 죄책감을 해결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여 죄책감을 해결하고, 그 이후 우리의 죄로 인해 상처 받은 이에게 직접 용서를 받아야 한다. 더불어 그 죄의 문제로 상한 심령이 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자기 용서가 이뤄질 때, 비로서 우리는 죄책감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죄책감을 해결하여 바른 신앙의 길을 걷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