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죄책과 수치 없는 권위주의와 한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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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모 논설고문/사회학 박사

‘프로스펙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 1년. 진실 없는 시대에 인간혐오와 여론분열을 자극하고 죄책과 수치가 실종되어 사람들이 더 뻔뻔해지고 총기 대량학살이 늘어 가는데도 대통령은 딴전을 부린다. 러시아가 미국 민주제도의 기본인 대통령 선거를 농락했다는 CIA의 보고서보다 김정은의 핵위협을 구실로 러시아 프틴과도 손을 잡아야 된다고 트럼프는 말한다. 선거 때는 중국의 환률조작을 탓 하던 그가 이번 아시아 방문에서 환대를 받고 시진핑에게 아첨하기에 분주하다. 한국을 우습게 여기던 트럼프가 방한 후에 태도를 바꾸고 심지어 필리핀의 반미 독재자와도 손을 잡았다. ‘문명간의 충돌’의 저자 새뮤엘 헌팅톤의 이론을 빌리면 트럼프는 회교 테러집단 및 그와 유사한 북한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기독교권 국가들의 단합 외에도 유교권 국가인 중국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그의 기본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나 생존권을 존중하기보다 달러와 핵 미사일의 힘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구시대의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다. 아시아 지역 안보는 아시아 국가 리더들의 관심사이고 트럼프의 시각은 미국의 국익에 국한돼 진실과 정의라는 도덕성은 불편한 장식품이다.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인간 이후(Post-humanism)시대가 눈앞에 있어 윤리적 기준을 논하거나 그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권위가 시들어간다. 그런 신호에 앞장선 트럼프 세계관에 종교개혁 5백 주년의 기독교계는 비춰줄 조명등의 촉광이 있나? 죄와 구원이라는 개념을 넘어, 교황청이 아닌 신 앞에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사제로서 자유로우며 평등하다는 것이 루터의 싸움이었다. 성직 아닌 일반 근로자가 모두 신성한 천직이라는 새 종교의 신념 아래 노동 이윤을 추구하는 서구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또한 민족 국가들이 등장했다. 막스 베버의 개신교 이념설에 대응하여 한국의 자본주의 발생은 유교이념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친척과 지연이나 학연을 주축으로 신뢰와 이권 분배가 이뤄지는 현상은 유교적 자본주의 모델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유교적 자본주의 모델은 혈연-지연-학연 등 소규모의 인간 넷웍 밖에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이해가 없다. 친족지수(kinship index)가 “사돈의 8촌”을 넘으면 먹이사슬 대상이므로 권위로 눌러도 당연한 것이 한국의 보수 기득권층의 ‘갑질’의 기본철학이다.

트럼프를 국빈으로 극진히 대우한 한국의 보수파의 ‘갑질’ 가치관은 권위주의로 상통한다. 일부 좌파가 싸아드 설치 반대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북한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생각이 짧지만 월남의 최후 같은 사태가 한국에 임박했다는 극우파의 시나리오도 논리의 비약이다. 박근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문제에 연민 정서발동은 이해되지만 온갖 불법행위 고리가 극도에 달했던 비리척결에 저항하는 극우파의 주장에는 법 윤리와 도덕성이 결여돼 있다.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한국민의 약한 연민정서와 얽어서 이념대결로 밀고 가는 논리에는 무리가 있다.

모국의 그 갈등이 중서부 지역의 평화통일 자문위원회에까지 연장됐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4대 강국의 눈치를 보는 것만도 분통이 터질 일이다. 자랑스런 경제나마 외국 자본이 빠지면 부채만 남는 그 모국의 평화통일을 자문한다는 사람들이 재미 한인사회 분열의 시범이 된다. 한국형 부정부패는 유교문화가 기독교로 위장한 물량적 성공주의 탓이다. 범죄 당사자가 아니지만 남의 범죄에 공모-공조하거나 숨기는 죄도 다스리는 미국 법의 권위는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