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식을 가장한 무지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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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성경의 요한복음 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무지한 자”라고 꾸중하신다. 그러나 당대 바리새인들은 가장 똑똑하고 지식이 가득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여겼던 바리새인을 향해 무지하다고 하셨을까?

가끔 전도해 보면, 자신이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고, 예수를 얼마나 많이 연구했는지 모른다면서, 그렇게 공부해 보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더라고 전도 받는 것을 거부하는 분들을 만나 본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정말 똑똑하고 기독교를 좀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목사인 필자보다도 더 많은 성경지식과 신학이론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예수님이 바리새인에 말한 것처럼 ‘겉만 똑똑한 자들’이다.

교회 밖에 세상은 그럴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기에 절대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내부에 있다. 교회 안에 너무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다. 교회 회의만 하면, “법이요”를 외치며 수 만 가지 규칙을 따지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자들이 있다. 성경공부만 하면, 어떤 목사는 이렇게 하고, 어느 교회 성경공부법은 저렇게 한다고 인도자보다 더 많이 떠드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새가족(새신자)으로 자연과학 계열 박사가 왔는데, 아무리 과학자라도 “창조과학”(젊은 지구 창조론 주장 – 성경의 인물 나이를 합산해서 지구 나이가 6천년에서 1만년 정도되었다는 기준으로 창조와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주장)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지식을 가장한 무지가 가득한 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젊은 세대의 침체가 심각하다. 그 이유를 청어람에서는 이렇게 진단한다.

“목사님, 우리(청년과 젊은 세대)가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아시나요? 우리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시나요? 교회가 세상에 관심이 있나요?”

수많은 목사들이 설교단에서 하나님 말씀이라는 근거로“진리”와 “앎”에 대해서 선포를 한다. 그러나 정작 세상은 교회가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왜 교회를 등지는지 교회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르면서 너무 많이 아는 척 하는 곳이 교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젠 들통이 났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는 것이다.

최근 필자의 교회에서는 “과학과 신앙의 대화”에 대한 건강한 토론을 이어가는 우종학교수를 초청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이라는 강연을 들었다. 우종학교수는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진화주의로부터 기독교 사상을 지켜야 되지만, 동시에 반지성주의에 빠져 있는 창조과학도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신앙은 이성과 과학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으로 하나님의 창조영역을 자기들의 입맛에 끼워 맞춰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정식 과학 학회나 세미나에서는 그 어떤 주장도 펼치지 못할 내용들을 소위 창조과학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목사가 설교시간에 한 과학상식이 “과학”의 전부로 믿고 있는 “겉만 똑똑한” 성도들에게 종교팔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창조과학자들은 최첨단의 과학시대에 비과학적 율법이 지식에 전부인 양 믿게 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이 시대에 예수가 교회에 오신다면, 그들을 향해 “혼자만 아는 척하는 무지한 자들이여”라고 부르지 않으셨을까?

18-19세기에 유럽의 선교사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자신들의 발전된 문명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선교는 20세기에 모라토리엄(일시중지)를 경험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식을 가장한 무지한 바리새인적인 선교였기 때문이다. 이 선교역사의 경고는 이제 창조과학자들과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교회여! 젊은 세대가 왜 교회를 떠나는지를 아는가? 성도여, 왜 과학자들이 교회를 등지는지를 아는가? 그리스도인이여! 왜 세상이 교회를 무인도로 만드는지 아는가? 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