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실없는 시대와 한인교회들의 장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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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모 <논설고문>

‘프로스펙트’

이 시대를 트럼프의 거짓말이 통용되는 진리-이후시대(Post-Truth Era)라고 정의한다. 시카고에서 지난 주간 열린 종교개혁 5백년 기념 심포지엄은 미국의 사회-정치 급변 속에서 한인교회들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시카고 한인 교회협의회가 신학 교수 3인을 청빙한 이 토론의 장이 단순한 기독교 이벤트가 아니라 신앙양심을 가진 지성인들의 이 지역에서 유례없는 토론장이 됐다. 강사 서보명 박사(시카고신학대 교수)와 조의완 박사(풀러 신학대 교수)는 진리(또는 진실)라는 단어가 의미를 상실한 현실을 전제하고 피터 차 박사(트리니티 신학)와 함께 이민 유입이 정체된 1세 한국어권 인구의 노화로 한인교회의 쇠퇴가 불가피한 장래를 논의했다.

5백주년에 제기된 트럼프 허위 현상을 “우리가 살아온 허구가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조의환 박사는 지적한다. ‘진리 이후시대’는 트럼프의 정신착란을 미국민 다수가 지지한 21세기에 온 것이 아니다. 이미 인류의 집단 거주를 가능케 한 소통 수단인 언어를 발명, 첫 단추를 꿸 때부터 진리-허위의 식별이 필요했다. 그건 선-악의 대결 이전에 상대방의 눈빛이 그의 말에 합치하는가라는 호기심 수준의 인지능력으로 시작했다. 곧 이어 여러 집단들이 각각 이해했던 ‘신’들에 관한 이해 상충은 또한 진리와 허위 이분법을 결사적으로 강요했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사막의 신을 약 3천4백년전 모세가 ‘야웨’라고 작명하여 유일신관 돌판에 우격다짐으로 새겨 넣을 때 그 신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엄명했다. 현재의 진리-이후 시대는 지난 2천년간 서구문명을 이끌어온 유태교-기독교가 진리라고 순교나 학살로 고수해온 경전과 이념들의 큰 부분들이 허위였음이 드러나는 부수 효과다. 유프라테스 강변 이락, 시리아의 사막 아프간의 산악,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다지만 기독교-서구문명은 과거의 죄과를 고해하지 않고 있다.

그 “허위 진리”가 모래 터의 누각임을 아는 미국인은 “영적이지만 종교적은 아니다”(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로 가고 있다. 퓨리서치(2012)에 따르면 미국의 영적 비종교인이 2007년 15%에서 2012년에 20%로 증가했다. 성년 30대 이하의 5명중 1명이 무종교자인데 그중 37%는 영성을 인정한다. 이들의 68%가 신을 믿지만 58%는 지구 자연과의 깊은 유대감을 갖는다. 바나 리서취(2017)에 따르면 SBNR의 93%가 지난 반년간 종교 예배에 참석한 일이 없다. “영적이지만 종교에 무관하다”는 그룹은 포기하더라도 “예수를 사랑하지만 교회에 안 간다”는 그룹에게는 아직 교회들이 희망을 둘 수 있다고 바나 리서취는 암시한다.

트럼프는 공포의 문화(culture of fear)를 이용하여 테러범들과 이민자들을 “미국의 적”으로 만드는 증오의 종교를 전도한다. 그런데 이 허위에 업혀 기복주의 미신 신앙은 “모든 일들이 내 탓 아닌 남에 의해 발생한다”는 낙관적인 이기주의로 춤춘다. 거기서 신은 나의 소비 요구를 충족하며 현세의 행복과 건강을 보장하는 존재로 믿고 맡기는 기독교의 번영신학과 성공의 신학이 굳혀진다. 미국 개척 역사의 탐욕과 잔학성 진면모를 모르는 한인 교인들에겐 19세기 후반 남북전쟁으로 ?긴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힌 기복주의 성공이 대견스럽다. ‘메이 플라워’ 이민이 순수했다며 한국식 기독교문화로 미국을 되살린다고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죽은 후 사철 골프장과 황금 사우나 장이 있는 천당 행 좌석권 보험까지 십일조로 예약케 하는 장례식이 한인교회 신도 생애의 절정이다. 그것이 긍정의 신학이라는데 왜 ‘가나안교인'(탈교회자)들이 늘어간다고 고민해야 되는가? 이것이 종교개혁 5백년 시카고 심포지엄의 중심 질문이다. 그 강사들이 제시한 질문과 시행방안을 백업할 데이터들이 없는 한인 교회 장래를 다음 기회에 더 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