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행중인 세대 교체, 정체성 컨텐츠를 탐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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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모 <논설고문>

‘프로스펙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말 씨름하며 한반도 핵전쟁 엄포로 세계를 겁 주더니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여 양심 가진 사람들의 저항에 부딛쳤다. 러시아 스캔들에 몰린 트럼프가 자신의 도덕성이 무너진 상황에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 무리한 핵전쟁을 저지를까? 한반도 문제는 “무력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스티브 배넌 참모가 해고됐지만 꼬리를 내렸던 김정은이 한미군사훈련에 발끈했으니 백악관의 이후 향방은 대낮의 일식이 지나가도 계속 어둡다. 이 혼란한 주변 상황에 무감각한 시카고 지역 한인들은 지난 몇 주 동안 부지런히 축제 이벤트들을 벌였다. 나는 이 축하의 이벤트들을 한인사회 세대 간의 대화와 세대교체 관점에서 재조명해 본다.

1962년에 출범된 한인 대표 기구가 1.5세의 리더십으로 옮겨지는 ‘세대교체’모습을 33대 한인회장 이취임 행사에서 볼 수 있었다. 이애덕 교수의 고전무용단 공연은 차세대에게 전통 무용을 전수하며 서구의 연출 예술과 접목하는 장르를 시도한다. 8.15 해방 기념식과 여러 강좌 등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도 나는 1세의 간여 없이 영어권 2세들이 3세 후대를 껴안는 의도가 튀는 스코키의 고유 음식과 문화 축제(Taste of Korea)를 주목한다. 이 행사에서 영어권 2세들이 1세-1.5세들의 연대에 의존하지 않고 “너무나 멀리 떨어진 교량에서”한국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벤쳐를 본다. 1세가 염두에 두지 못한 차차기 3세들에게 팔을 뻗치는 갸륵한 2세들의 마음이 보인다. 밀레니얼 팍에서 벌인 <얼씨구> 풍물 축제도 2차대전 후에 해방된 아시안 민족 팀들의 동참으로 기반을 넓힌 행사다. 우리 1세들이 말 하는 차세대로의 리더십 계승은 냉소할 수준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비-한인 청중들과 지역 정치인들의 호응을 크게 받은 그룹들의 행사들에서 나는 정체성 행위(identity behavior)라는 의미를 본다. 20여회 관록을 가진 상공회의소 브린모어 행사는 시카고의 <한국의 맛> 축제의 원초형이며 1세의 뒷 그림자에서 1.5세 및 영어권 2세의 협동을 동원한 것이다. 브린모어 축제는 신분-지위역할(status behavior) 반복하며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힌 행사다. 한인회장 이취임 행사는 1세의 사회적 구도(social construct)와 행태를 한국어권 1.5세대로 순탄하게 교체한 듯 보인다. 그 한인회도 신분-지위 역할 기대에 부응하는 한계–즉, 지역 한인사회 대표적 기구로서의 위상과 조직의 구조, 그리고 기능을 기대하는 1세 한인들의 의식구조에서 못 벗어난다. 1세대 리더들의 시야는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인간 기본요구 체계에서 초보 단계인 안정을 보장하는 물질적 소유, 소속감, 인정감 추구에 고착됐다. 그 한정된 평면 안에서 1세들은 명예와 감투싸움,허위 주장, 법정소송을 상식과 문화로 생활하는 데에 익숙하다.

스코키 축제의 영어권 차세대들은 1세 한인그룹의 소속감이나, 인정감, 물질 지원을 넘어서 “한민족의 후예”라는 정체성에 걸 맞는 행위를 인식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자발적 행위를 했다. 영어권 차세대는 그 단계를 넘어 보다 높은 자아실현–한민족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그 요구에 작동하기를 나는 기대한다. 물질이나 명예, 파워 달성이 관심사이기보다 “한국인다운 한국인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여 유효하게 주류와 3세대에게 전하는 것이 영어권 2세들의 관심사라고. 그런 기대가 틀려 그들도 1세의 ‘유산’을 답습한다면 우리의 장래는 너무 슬프다. 그런데한국인 정체성의 내용(컨텐츠)이 빈약하다. 남의 것을 카피하여 ‘K-Pop’이라, 징소리처럼 시끄럽고 단조한 반복성(redundancy)을 고유예술이라고 정착하는 데서 넘어서야 한다. 세대간의 유대와 이해관계 혼잡된 행사의 평가는 앞으로 세대간의 협조나 갈등이 어떤 양태로 진행될지를 구도를 암시한다. 정체성의 횃불을 패스하려면 전통문화의 컨텐츠가 무엇인가 정립하는 과제 탐구부터 하자. 그 정체성 컨텐츠 정립에 1세들의 이해관계를 투사하거나 모국 정치 지향에 이용하려는 습성은 빠져야 바른 출발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