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새와 제비가 되고 싶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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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 교회)

 

이어령교수는 그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모든 새들이 사람을 피해 먼 곳에 둥지를 트는데 어째서 제비만은 집 안에 들어와 일을 까고, 새끼를 키우는가?”

대부분의 새들은 가능한 사람을 피해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키우려고 한다. 그러나 제비는 다르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 처마 밑에 둥지를 만들어 사람과 같이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새끼를 키운다.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으면 사람들이 손을 대고 해를 끼칠까 걱정해서 다른 먼 곳으로 갈 것 같은데, 제비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령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제비의 믿음 때문이다.”

곧 제비는 사람이 자기와 새끼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구렁이와 매와 같은 맹수로부터 자기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집에 둥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꽤 설득력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런 제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로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제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두 주 전에 썼던 칼럼에서 다윗의 시편 84편 3절,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구절을 통해, 주님의 전, 곧 하나님의 처소에 있기를 사모하는 신앙의 삶을 살자고 했다. 이 구절에서도 제비는 주님의 제단에 둥지를 만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제비의 믿음과 의지가 부럽기만 하다.

한국에서 사역하는 한 선배 목회자와 연락을 나눴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줄어 들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교회 예배당을 비워 문화 센터처럼 체육관으로 사용하고 주중에는 교육관을 통해 카페를 열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찾아 오는데, 그 모습을 보고 도리어 목회자로서 본인은 더 자괴감에 빠져 한 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써 교회에는 사람들이 찾아 오지 않더니 교회라는 간판 대신에 문화센터와 카페라는 이름을 붙이니 사람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목사로서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는 것이다.

제비처럼 믿음으로 교회에 와야 하지 않는가? 아니, 그렇게 하나님의 집을 찾아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 목회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간판을 떼고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이름을 붙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자, 전도와 선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위하는 것이 목회자라니 … 가슴이 찢어지더라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일 예배를 빠졌다고 한다. 몸이 무거워서 교회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자녀가 조금 아파서 예배를 못 갔다고 한다. 차가 밀려서 예배 시간에 늦어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와서 그날은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해서 못 갔다고 한다. 그냥 …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이유들이 많다. 제비처럼 믿음 하나만으로는 오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주일성수를 지키지 못하고, 주님의 전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믿음’으로 꾸중하고 훈계하지 못하고, 그들을 어르고 달랜다. 주일에 교회에 와 달고 굽실거리고 신앙을 구걸하며 믿음을 읍소한다. 이건 아니지 않는다.

제비와 같은 성도가 그립고, 제비의 믿음이 놀랍다. 나도 제비의 믿음으로 주님의 처소로 가고 싶다. 그런 진짜 교회를 꿈꿔본다.